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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북쪽에 노곡이란 마을에는 작년 겨울부터 다섯 곳에 기둥을 세워 짓는 사칸의 집이 금년 봄에 이르러 그 준공을 고했습니다. 밀성 박씨 여러분들이 그 선조 수와공 諱(휘) 소음, 전헌공 諱(휘) 증흠, 경와공 諱(휘) 서흠 삼형제 분을 위해서 지은 집으로 편액을 삼우재라 하였습니다. 태희, 태훈, 정희군 등 세사람이 나에게 와서 문미에 걸어둘 재기의 글을 청합니다. 생각하니 쇠약하고 병든 내가 감당할 수 없으나 당연히 멀리서 찾아와서 간곡히 부탁하는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삼가 그 遺事(유사)를 살펴보면서 기록합니다. 저가 일찌기 詩經(시경) 斯干章(사간장)을 읽으니 「松竹(송죽)이 우거지듯 형제의 우애가 많으며,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탓하는 일 없이 한마음 일세」라고 읊고 있으며, 또 常棣章(상체장)을 읽으니 「무릇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 형제보다 더 귀한 것이 없네」라고 읊고 있습니다. 학문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이 시를 스스로 읽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이 敎訓(교훈)을 지키려 하나 행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지금 살펴보니 박씨 삼형제분은 仁山(인산) 휘 義吉(의길) 공의 손자이고 月堂(월당) 휘 거인 공의 자제분들입니다. 緒業(서업:학업 또는 덕업)을 다스리면서 힘써 일하는 것이 형과 동생이 다를 바 없습니다. 進士(진사)에 합격하여 향내에서 名望(명망)을 드러냈으나 어지러운 세상을 맞아 시골에 숨어 사신 선비들입니다. 비록 같지 않지만 문집과 墓道(묘도)의 상석을 마쳤으니 그 자손으로서 도리를 한결같이 하였습니다. 지금 자손들이 세 어른의 德業(덕업)을 드러내고 있는 이 집을 만든 것은 마땅한 것이며, 토목공사를 일시에 마친데 불과하나 선조를 빛낼 자랑할 바탕이 됩니다. 바라기는 박씨 자손 여러분이 이와 같은 일을 잘할 뿐 아니라 반드시 세 어른의 우애어린 본뜻을 알아서 종족을 맞으면 한편으로는 친절하며 한편으로 소흘하게 대접하여 이간하는 일이 없어야겠고, 또 종족간에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을 비교해서 차별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많은 전답을 비치하여 굶어도 같이하며 배불리 먹기도 같이 하기를 마치 吳中(오중)의 范文正公(범문정공)과 같이 하며 모든 일에 인내하며 종족간에 화목하기를 마치 東平(동평)의 張公藝公(장공예공)과 같이 한다면 세 어른의 영혼께서는 어찌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나에게도 자랑할 후손이 있다오」 이상과 같이 기록합니다. 단기 4297년 서기 1964년 4월 광주 노근용 삼가 기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