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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岡齋記(덕강재기) [출처 : 합천 누정록(陜川 樓亭錄, 합천문화원, 2002년)] 密陽朴氏(밀양박씨)는 우리 고을에서 오래된 氏族(씨족)이다. 拙堂先生(졸당선생)은 강직한 성품으로 勢道家(세도가)를 거슬러서 이곳에 隱退(은퇴)하고 德性(덕성)을 함양하여 後孫(후손)에 傳(전)하니 永世家訓(영세가훈)을 삼았다. 그의 玄孫(현손) 部將(부장) 仁粹公(인수공)은 出世(출세)할 뜻이 있어서 五品官(오품관)이 되었는데, 天性(천성)이 强直(강직)하여 아부하지 못하고 벼슬을 버리고 古園(고원)으로 돌아와서 德(덕)을 기루어 옳은 일을 行(행)하여 親族間(친족간)에 和睦(화목)하고 窮(궁)한 사람을 도우니 고을사람이 다 알고 尊敬(존경)했다. 睦族(목족)하고 窮(궁)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만 보고도 다른 行實(행실)은 推想(추상)할 수 있다. 墓(묘)는 界山(계산) 東(동)쪽 마을 뒤에 있는데 四百年(사백년)의 歲月(세월)이 흘렀다. 前年(전년) 庚子(경자)에 모두가 合力(합력)하여 墓(묘) 아래 四楹(사영) 집을 짓고 집이 완성되니 後孫(후손) 濟昶(제창)이 記文(기문)을 나에게 請(청)하였다. 齋(재)는 界山(계산) 東(동)쪽 講德山(강덕산) 아래 터를 잡았고 論德山(논덕산)과 隣德山(인덕산)의 二山(이산)이 함께 揖(읍)하듯이 앞에 서 있으니 이에 德岡(덕강)으로 齋名(재명)을 삼고 記文(기문)을 쓴다. 朴氏(박씨)들이 祖上(조상)의 恩澤(은택)을 점점 잊어져서 祖先(조선)들이 累代(누대) 이루지 못한 齋室(재실)을 建立(건립)하였다. 祭器(제기)를 씻을 부엌이 있고 墓祭(묘제)에 精神(정신)을 齊戒(재계)할 방실이 구비되어 墓祭(묘제)를 더욱 敬虔(경건)하게 들이니, 祖先(조선)을 追慕(추모)하여 孝誠(효성)을 한 것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祖先(조선)을 追慕(추모)하는 實狀(실상)은 齋室(재실) 하나 짓는 것만으로만 다하였다고 할 수 없다. 祖先(조선)의 마음가짐과 行事(행사)의 追慕(추모)함을 본받아 實行(실행)하는 것이다. 公(공)이 벼슬을 버리고 故鄕(고향)에 내려온 것은 公(공)이 分數(분수)를 아는 것이요, 宗族間(종족간)에 和睦(화목)하고 貧窮(빈궁)한 者(자)를 救濟(구제)하는 것은 仁(인)의 發露(발로)이다. 公(공)이 崇尙(숭상)하는 바는 分數(분수)와 仁(인)이었는데 公(공)의 後孫(후손)들은 이를 알고 祖上(조상)의 마음가짐을 헤아려 實踐(실천)하고 公(공)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公(공)의 靈(영)이 즐겁게 降臨(강림)하여 기뻐할 것이며 後孫(후손)들은 厚德(후덕)한 敎訓(교훈)을 유지할 것이다. 後孫(후손)들은 이를 힘쓰라. 詩(시)에 曰(왈) 祖先(조선)의 큰 德(덕)을 본받아 修養(수양)하라. 壬寅(임인) 流火節(유화절) 義城(의성) 金永善(김영선) 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