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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17년 10월 31일 (음 9월 12일) 화요일(신라기원 2074년) 전화:053-588-7300 제130호 12면(월간)뱚 인체파동원리 http://blog.daum.net/tongnamu79 손을 얹으면 아픈 곳이 낫는 보석체험, 추풍령 통나무연수원 븡펜션. 문의:010-2336-7852 밀양시는 지난 17일 삼문동 야외공연 장 일원에서 열린 ‘제22회 밀양 시민의 날’ 행사에서 문화의 달인으로 불리우며 45년간아랑제,지역향토사연구,밀양아 리랑 전승·보존에 이바지해온 숭덕전 前 박희학 참봉에게 밀양시민대상(문화부 문)을수여했다. 시민대상을 수상한 희학 전참봉은 193 3년 밀양시 상동면에서 태어나 밀양중학 교 졸업 후 고정초등학교에서 문맹퇴치 를 위해 강사로, 국민산업대 농업경영학 과를 졸업후에는 농촌지도직으로 27년 공직자로 봉직 한후 1972년부터 현재까 지 45년간 아랑제, 지역 향토사 연구, 특 히 밀양아리랑 전승·보존에 기여한 인물 로 밀양아리랑학술대회 개최, 밀양아리 랑 경창대회 개최, 밀양아리랑 가사집 발 간, 밀양아리랑 노래비 제작은 물론 밀양 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 정받았다. 시집 하늘아래 구름아래(1994), 성재 유고집(2003) 에세이 1집 살며생각하며 (2003), 세월속에 세상살며(2010), 그림 으로 본 숭덕전 2년 역사(2010), 밀양아 리랑 가사집 편저(2010), 3집 꿈이 영그 는 행복한 세상은 어디에(2014), 숭덕일 기(2015) 등 왕성한 집필로 노익장을 과 시하며 문학활동에 여념이 없어 귀감이 되고있다. 특히 2015년 발간한 숭덕일기는 숭덕 전 참 봉 으 로 2 년 간 봉 직 하 는 동 안 일 기 형 식으로 숭덕전의 일상생활과 제례규범, 예절 등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소중한 자료로인정받는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는 밀성박씨 대종 회 임원진과 박씨대종친회 경남본부 임 원진이 대거 참석축하 하였으며,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은 1980년 태광실업㈜을 설립해 세계적인 기업들과 함께 전문 OE M기업으로 성장시켰 고, 1990년 이후 베 트 남 등 동 남 아 로 사 업 을 확 장 해 세 계 적 인 기술력과 경쟁력을 널리 인정받는 밀 양의 대표 향우 기업인으로서, 2016년 밀 양시민장학재단에 10억원의 장학금을 기 탁했다. 2017년에는 향후 10년간 매년 3억원씩 총 30억원의 장학금을 기탁키로 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받아산업부문을수상했다. 박희학전숭덕전참봉밀양시민상 수상 향토사연구위원으로활동,지역문화·예술발전기여공로븣박씨종친회에도 큰족적남겨 지난 17일 오후 경남 밀양시 삼문동 야외공연장 일원에서 열린 ‘제22회 밀양시민의 날’ 행사에서 박일 호밀양시장이 박희학참봉에게시민대상을수여하고있다. (사)숭덕전보존회 임원회의가 지난 18일 경주시내 ‘궁 한정 식’에서 임원회의를 갖고 설립목적인 제례연구 및 청소년 인성 교육을 통해 숭조심을 고취하고 종원간 애종을 실천하는데 주 력하기로 하고 12월경 임시총회를 송년회와 겸하여 갖기로 하 였다. 원로 종원과 임원 등 30여명이 함께하며 격의 없는 대화 속에 전통문화보존및발전에대한토론이이어진가운데동준이사 장(前 숭덕전참봉)은 전·릉 참봉으로서 길게는 2년 가까이 짧 게는 수개월동안 함께하며 전·릉을 정성껏 수호 봉심하였으나 일부 단체의 힘의 논리에 의해 결과가 매끄럽지 못하게 물러나 저로서는수치스럽고부끄럽다고말하고그러나우리는전통문 화계승발전에가일층노력해야할것이라고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최근 숭혜전보존회와 숭신전보존회의 역동 적인 활약은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는데 공감하고 후손 들을 위해서라도 체계적인 연구 모임을 통해 변해가는 예법을 바로잡아 더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 할 것을 다짐하고 조상 을 섬기는 진정한 숭조가 무엇인지 모르고 조직과 힘의 논리로 무장한 일부 선동세력에 의해 부화뇌동하는 종원들이 많은 것 은 종사나 보학지식이 현저히 낮아 일어나는 현상으로 후손들 에게무엇을물려줄지한편으로는걱정스럽다며최근벌어지고 있는일련의사태에대해우려를표명했다. 한편 신라 제13대 미추왕(味鄒王)과 제30대 문무왕(文武王) 및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숭혜전(崇 惠殿)은제례악연구등신라의정통성과맥 을잇는데노력하며 대성(大成)이루고 있어 신라시조왕의 후예인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있으면서도한편으로는우리의부끄러운민낯을보여주는 듯하여 공동의 숙제로 남는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종 원들이숭덕전보존회와함께하기를바라며관심을촉구했다. /박영택명예기자(부산동래구지부, 전(前)유리왕릉참봉) 사단법인숭덕전보존회임원회의가 져 제례연구및청소년인성교육함양등설립목적성실수행븣년말임시총회예 정 박윤도 참봉협의회 이사장(右)이 박동준 前 숭덕전 참봉(숭덕전 보존회 이 사장)에게 지난 2년 동안 숭덕전 참봉으로 수직한 기념으로 시조대왕 탄강 설화에등장하는말 조형물을선물하고격려하고있다. 조선시대 충절의 표상으로 사육신의 한분이신 충정공 박팽년(1417~1456) 선 생 탄신 600주년을 맞아 선생의 삶을 재 조명하는 특별전 븮꿈속에서 도원을 거닐 다븯전시회개막행사가지난달29일오후 4시 권선택 대전시장과 조승래 국회의원, 박도규 충정공파 종친회장, 박성규 육신 사보존회장, 박창순 사육신현창회장을 비롯 지역유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 시립박물관3층전시실에서열렸다. 이번 전시는 오는 12월 17일까지 계속 되며 ‘박팽년유허비탁본’, ‘몽유도원도’, ‘추강집’,‘육선생 유고’등 전국에 흩어진 다수의 소중한 문화재를 모아 100여점의 유물을전시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븮유허비의 비문븯은 우 암 송시열 선생이 짓고 당대의 명필로 유 명한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글씨를 써 눈 여겨 볼만하다. 또한 븮몽유도원도븯는 144 7년 4월20일 안평대군이 꾼 꿈을 듣고 안 견이 사흘에 걸쳐 그린 그림으로 전해진 다. 그림 속 기암괴석과 계곡 사이 길 따 라 무릉도원을 걷는 4명의 선비 가운데 한명이 바로 박팽년으로 당시의 위치를 가늠해 볼만하다. 특히 대전에서 처음 공 개되는 박팽년 선생 븮친필 옥판(玉版)븯은 박팽년 선생이 집대성으로 불렸던 면모 를잘보여주는유물로평가된다. 이날 개막식에서 류용환 대전시립박물 관장은 “븮몽유도원도븯에 등장하는 4명은 지금도 절친의 모습이지만, 안평대군과 박팽년 외에 다른 2명인 신숙주와 최항은 뒷날 수양대군(세조)의 편에 서서 공신 이 됐다.선생은 어떤 일을 당할지 알면서 도 변 절 과 배 신 이 난 무 하 는 시 대에 소신을 지 켰다. 내년에 탄 신 600년을 맞은 성 삼 문 선 생 과 함 께 충 청 도 의 기질을 잘 보여 주는 선비”라며 선생의 곧은 절 개와충절이그립다고말했다. 권선택 대전시장과 조승래 국회의원의 축사와 후손대표로 박팽년 선생을 파조 로 모시는 충정공파 종친회 도규 회장 인 사말이 이어진 가운데 도규 회장은 행사 를 주관해준 대전시 관계자 모두에게 감 사드린다고 말하고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그에 대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탄신 600주년을 맞아 오는 21일 집성촌인 묘골에서의 고택음악제와 11월 10일 대 구에서 학술대회, 12일 사육신 추향제례 를 봉행계획을 전하고 성원과 협조를 당 부했다.한편 이날 오전에는 오전 11시 유 허지인 가양동에서는 대전광역시가 주관 하고 대전문화유산협의회 후원으로 탄신 600주년 헌다례(獻茶禮)가 (사)한국전 례문화원 권진희주 대표의 집례로 이제 관 대전시 행정부시장, 충정공의 종손 완 수,충정공파 종친회도규회장 순으로 헌 작엄숙봉행되었다. 회덕(현재 대전 대덕구 읍내동)에서 판서 박중림의 아들로 태어난 박팽년 선 생은 유학에 밝고 문장·필법이 모두 뛰어 나 집대성으로 불렸다. 세조가 계유정난 을 일으켜 즉위하자 단종 복위를 도모하 다 죽음을 맞았다. 대전에는 증조 박원상 의 묘가 동구 대별동에 남아 있고, 동구 가양동에 유허와 비각이 있으며, 순천박 씨 충정공파 종친회는 이날 선생의 탄생 600주년 기념비를 유허비각 앞에 세우고 제막식을함께가졌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박팽년선생탄신600주년기념 븮꿈속에서도원을거닐다븯특별전개막행사 성료 박팽년선생탄생600주년기념비제막식후참석한 대전시관계자와중중후순들이 함께하고있다. 몽유도원도(상)와서문(하) 박팽년선생친필옥판 육선생유고 박도규 회장이 탄신제에 서헌다하고있다. 조선통신사 거점도시였던 영천시는 지 난 달 30일 영천시 통합축제인 2017 영천 별의별축제 일환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재 연과 마상재 시연행사를 가진 가운데 161 7년 부사(副使)로 간 운계 박재 선생의 1 4 대 손 성 갑 현 종 이 정 사 (正 使 )로 참 가 하 였다. 이 날 행 사 는 오 후 3 시 3 0 분 영 천 시 보 건소에서 조양각으로 이동 경상도 관찰 사를 비롯한 인접지역 수령들이 긴 여로 를 위로하는 영접의식에 이어 총500여명 의 조선통신사행렬과 시민퍼레이드가 조 양각과 영천시청을 출발, 시청오거리에 서 합류해 영천공설시장, 국민은행오거 리를 지나 영천교까지의 2㎞의 구간에서 재연되었다. 조선통신사는 한일 양국의 평화를 위 한 국가사절단으로 조선통신사를 통한 교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선과 일본 의 평화와 선린우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 선 침략은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이 났 지만, 이 전쟁은 조선을 황폐하게 만들었 다. 조선으로 출병하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사명대사 유정과 의 교섭을 통해 조선과의 국교를 회복하 였다. 이후 도쿠가와(德川)바쿠후(幕府) 는 조선통신사의 일본방문을 븮쇼군(將 軍) 일대의 의식븯으로 매우 중요시하였 다. 1607년부터 1811년 까지의 약200여 년 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번에 걸쳐 방 문하였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경사나 쇼 군의 계승이 있을 때마다 방문하여,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도쿠가와 쇼군 의 답서를 받았다. 제2회 방문은 교토(京 都)의 후시미(伏見)에서, 제12회 방문은 쓰시마까지였으나, 그 외에는 모두 에도 까지 왕복하였고 제4회 부터 제6회까지 는 닛코(日光)에도 방문한 흔적을 남기 고 있 다 . 조선통신사는 정사(正使)·부사(副使) ·종사관(從事館)의 삼사(三使)이하, 화 원( 匠員)·의원( 昇院)·역관·악사(樂士) 등 총 400명에서 500여명에 이르는 대 사 절단이었다. 조선의 수도 한양(漢陽)을 출발하여 일본의 수도인 에도까지는 반년 이상이 소요되는 왕복 약 3,000㎞의 여행이었다. 긴 여로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 은 문인들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 을 주고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선단(船 團)과 행렬은 일본의 민중들로부터 열광 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본 각 계층의 사람 들에게크나큰영향을끼쳤다. 한편 이날 정사로 참여한 성갑 현종은 운계 박재 선생의 14대손으로 운계 선생 이 통신사로서 매일 매일 기록한 동사일 기(東 汎日記)와 회답사일기(回答使日 記)등의 국역발간과 현창사업에 크게 기 여하고 있어 이번 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 는 선조의 옛길을 더듬어보는 중요한 자 리가되었다며행사의의미를되새겼다. 운계 박재 선생은 1617년 추탄 오윤겸 (楸灘 吳允謙, 1559년~1636년)을 정사로 한 조선의 공식 문화외교사절단의 부사 (副 使 )로 일 본 으 로 건 너 가 우 리 동 포 포 로 321명을 데려오고 임진왜란 후 단절되 었던 일본과의 국교가 정상화 하는데 크 게 공헌하였으며, 일본왕이 준 선물 은자 6,000량을 일본에 놓고 왔고,일본왕은이 를 부산으로 가지고 와 광해군은 영건도 감(국가의 건물을 짓는 부서)에 주어서 관청을짓는데보태였다. 이로 인해 일본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 은 청렴결백한 관리이자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비에 반 대하다가 해직된 충절의 선비이기도 하 다. ‘조선통신사행렬재연행사’가져 제2차1617년통신사부사박재선생의14대손성갑현종정사(正使)참가븣영천시 별의별축제일환 조선통신사정사로 참가한 성갑현종이 거리행렬재현에나서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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