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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소나무와 신포(新浦)의 잣나무로 고도(古都)에 사당이 완연하고 선도산 아래 낙수(落水)가 구름 낀 산이 공읍(拱揖)을 하고 있어 마치 하례를 올리는 듯하며 백신(百神)이 호위하며 묵묵히 보우(保佑)하는 듯하다. 이제 다행이 이번에 부윤 홍양한(洪良漢) 공이 임금을 가까운 곳에서 모 시다가 이곳 동쪽으로 부임해 왔으니 땅은 성조께서 나라를 처음 연 곳이요 때는 청명하 고 아름다운 시대였다. 홍공이 임금의 명을 받들고 유적을 생각하여 늠료( 廩料)를 덜어 비용을 보태 양식을 축내지 않고 공사에 백성들의 힘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도 때를 넘기지 않고 공사를 마쳤다. 그래서 덕을 기록하는 높다란 비석이 풍우 에 씻기어 마모되는 것을 면하게 도이어 한 고을의 덕행을 보 게 되었으니 , 이 런 것이 이른바 전공(前 功)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전각을 보수하는 일은 한결같 이 숭인전 숭의전 두 전각의 절목에 의해서 할 것이니 우려할 일이 무엇이 겠는가? 다만 서운한 것은 나라의 숭봉(崇奉)이 이미 삼각의 뜻을 따르고 또 두 전각의 의절(儀節)과 같게 하고 있으니 후손 된 자들은 마땅히 각별히 십분 삼가고 조심 해서 복구되지 못한 것을 복구해야 하는데도 전후 일을 맡은 자들이 봉행을 잘하 지 못해 많은 물의(物議)를 빚고 있으며 전관의 추천 명단 역시 지나친 폐단이 없지 않아서 공론이 분개함이 끝이 없다. 대저 제사를 지내는 도리는 오로지 정성과 공경이어서《시경(詩經)》대아 (大雅) 생민편(生民篇)에 보면 제사를 지내는 절차에 대해 갖추 말하면서”반드시 혹 방 아 찧고 절구에서 퍼내고, 쌀을 싹싹 씻으며 쪄서 김이 뭉게뭉게 오르며 거 의 죄 (罪)를 짓지 말아야 후회가 없다.”고 끝맺었으니, 원하건대 제사를 지낼 때 에 엄 숙하게 옷을 갖추어 입고 혹시라도 게을리 하지 말아서 반드시 영령께서 임 해 계 시는 듯한 정성을 바쳐 혹시라도 전처럼 삼가지 않고 불경(不敬)하여 오르 내리는 영령께 죄를 짓는 일을 하지 말아야한다. 아, 원릉의 송백(松柏)을 엄히 수호하여 때때로 순시를 하여 살펴서 베지 못하도 록 하기를 반드시 남국(南國)의 감당(甘棠)처럼 하고 전각 옆의 대나무 숲을 더욱 아껴서 보호해 기르기에 겨를이 없어야 하는데 엄숙해야 할 지척의 땅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 어찌 촉인(蜀人)들이 사당의 잣나무를 애호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