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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anja.naver.com/word?id=239939 었는지 모르겠다.” ○동경기(東京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금척원(金尺院)은 경주부 20리 되는 지점에 있는데 혹 시조가 임금이 되 기 전 꿈속에서 신인(神人)을 보았는데 신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금척을 주면서 말하기 를 “너는 성신 문무(聖神 文武)하니 백성들이 바란 지 오래이다. 이걸 지 니고서 나라를 바로 잡으라”라고 하였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금척이 손 에 있었다. 세속에 전하기를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될 때 그 금척으로 재어주면 죽은 사람이 살 아나고 병든 자가 소생하여 국보(國寶)가 되었는데 중국에서 그 말을 듣고 달라고 하므 로 신라왕이 주고자 하지 않아서 이곳에 감춰두려고 30척 되는 산을 만들 어 감 추고 원사(院舍)를 지었기 때문에 금척원이라 하였다. ○임진(壬辰) 5년-한나라 감로(甘露) 원년(元年)-봄 정월(正月) 알영(閼英)을 왕비 로 세웠다. 처음에 용(龍)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나-알영 우물은 경주부 남쪽 5 리 지점에 있다.-오른쪽 갈비뼈 사이로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걸 늙은 할미 가 보 고 이상하게 여겨 거두어 길러 우물 이름을 알영정이라고 하였다. 자라자 덕스러 운 모습이 있으므로 시조가 들여서 왕비로 삼았는데 현숙한 행실이 있어 내조(內 助)를 잘하므로 당시 사람들이 두 성인〔二聖〕이라고 불렀다. ○권근(權近)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가 흥성하려면 비가 내조(內助)하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니, 하(夏)나 라 때 는 도산(途山)이 있었고 상(商)나라 때에는 유신(有㜪)이 있었으며 주(周)나 라 때 는 태사(太姒)가 있어서 처음을 바로하고 기초를 세운 것이 지극하였었다 . 이제 알영이 시조의 왕비가 되어 나라 사람들이 아름답게 일컬었으니 반드시 그 덕이 나라 사람들을 심복(心腹)시켰기 때문이다.” 삼가 상고하건데 주문왕(周文王)은 사씨(姒氏)를 얻어 시인(詩人)이 “좋은 짝을 구하였네〔好逑之〕”라고 노래했고, 시조는 알영을 얻어 나라 사람들이 두 성인 이라고 일컬었으니, 과연 모든 교화(敎化)와 만복(萬福)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시경(詩經) 갈담(葛覃) 종사(螽斯) 편에서 본지(本 支) 백 세의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우리 시조의 후예들 역시 오래도록 번성한 것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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