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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를 시작한 3개월이 되도록 비석을 각(刻)하지 못하다가 임신년 3월에 영변 (寧邊) 석수(石手) 박용수(朴龍秀)가 스스로 좋은 돌을 얻어가지고 왔는데 돌무 늬가 기이했다. 12월에 돌을 운반하여 계유년 2월 능(陵) 아래로 운반해 갑 술 년 정월에 갈아서 다듬었다. ○ 을해년 10월 비석을 다 깍았다. ○ 무인년 12월 비음기(碑陰記)를 각했다. ○ 기묘년 정월 부윤 윤학동(尹學東)이 조정의 명을 받들어 힘 을 다해 개 두석(蓋 頭 石)과 좌판석(坐版石)을 능 아래로 운반해서 비석을 세우니, 29일 신해 일이었 다. ○ 당초 부윤 황경원(黃慶源)이 빗돌을 드 는 역사를 하고, 또 마련하는 물력 을 감 영 에 보고해 얻어서 회감(會減)하였으며 부윤 김선행(金善行)은 승군(僧軍 )을 청 해 얻어-10읍에서 1천5백명이다-빗돌을 운반했으며 부윤 홍익삼(洪益三)은 비석 깎는 일과 인부를 감독했다. 비각(碑閣)을 영건(營建)할 때 부윤 홍양한( 洪良漢) 이 음식 등 물자를 넉넉하게 도와주었으며 그 후 신사년 10월부터 기묘년 12월 일을 마칠 때까지를 전후해서 부윤의 공로가 지대했으니, 이 어찌 여러 박씨들 이 감송(感頌)하지 않겠는가? 비각기(碑閣記) 동경(東京:慶州)은 바로 성조(聖祖)께서 나라를 세운 터이다. 왕께서는 탄 생하여 7세가 되자 어른처럼 되시고 13세에 육부의 군장이 되셨다. 21년에는 경성 (京城) 을 쌓고 29년에는 왕궁을 짓고 재위 61년에 승하하셨다. 그때에는 해가 동쪽에 뜨면 만물이 모두 보 고, 그 덕을 말하자면 모든 별이 북극 성을 감싸는 것 같고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것과 같았으며 세 성씨 가 선 양(禪讓)해 가며 1천년 국운을 누렸다. 당나라 무덕(武德) 초에 당고조가” 신라는 군자의 나라이다.”라 고 하면서 신하의 예(禮)로 대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모 두 성 조께서 후손에게 남기신 모책과 지극한 덕이 아님이 없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