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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우리나라 사서(史書)를 상고하건대 고려 때 김부식(金富軾)이 중국에 들어가 자 이부(吏部)에서 그림 족자 하나를 보여주면서”이것이 바로 당신 나라 신라시 조왕의 성모상(聖母像)이다. 본래 황제의 딸이었는데 선술(仙術)을 얻어 동해(東 海)를 유람하다가 남편 없이 잉태를 하였기 때문에 그 찬(贊)에”선도성모가 현임 을 낳아 나라를 세우게 했네〔仙桃聖母 娠賢肇邦〕”라고 하였는데 선도는 바로 경주에 있는 산 이름으로 그 산에 아직도 성모사의 유지(遺址)가 남아 있다 . ”라고 하였으니, 사가(史家)가 어찌 거짓말을 기록하겠는가? 혼돈(混沌)의 세상이 처음 개벽할 때에 반드시 신성(神聖)이 맨 처음 나와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주몽은 해가 비추어 탄생하였으며 시조왕의 어머니 성모 는 신 선인 이었다. 하늘이 이미 이런 성자(聖子)를 낳고 용이 알영씨(閼英氏)를 낳아 왕에게 시집을 왔으니 하늘의 뜻이 심상치 않았음을 알 수 있겠다. 문왕이 있은 연후에 사씨(姒氏)에게 크게 뒤지겠는가? 다만 세대가 아주 멀 고 징험할 만 한 문 헌이 없어서 여러 박씨들의 소목(昭穆)이 아주 오래되어서 변명할 길이 없 는 것 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박씨들은 실로 시조왕에게서 비롯되었으니 밀양 금성 함양 등 여러 곳을 관향으로 삼은 자들이 천 갈래 만 갈래이지만 그 근원을 따져 보면 모두 왕의 자손들이니, 옛 말에 이른바 “성덕(聖德)이 있으면 그 후손 이 번 창한다.”는 말이 과연 빈말이 아니다. 더욱 경사스러운 것은 본손과 지손으 로 우 리 조선의 성비(聖妃)가 된 분으로 인성왕후와 의인왕후가 계시며 외손으로 오늘 날 성모가 된 분으로 인경왕후와 인현왕후 인원왕후가 계신다. 그러니 나 라에서 본 숭덕전을 높이 받들기를 극도로 하는 것은 비단 대비에게 큰 영광일 뿐 만 아 니라 우리 성성의 끊임없는 효도의 정치에 있어서도 지극하다고 하겠다. 비문을 다 써 가는데 참봉 정원(挺源)이 말하기를”이제 우리 비석이 다 되 어가니 더는 유감이 없게 되었습니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왕께서 불던 옥적( 玉篴)이 아직도 조령(鳥嶺) 서쪽에서 들리며 왕께서 일찍이 사용하던 금 척(金尺)이 아직도 건천(乾川) 남쪽에서 빛을 내고 있으니 왕 의 어둡지 않은 영령이 이에서 더 욱 드 러나니, 이런 사실도 기록해 주십시오.”라 고 한다. 아아, 왕의 크고 위대한 공렬 (功烈)이 사서에 기록되어 전하고 신령스런 이적(異跡)이 사람들 이목에 밝 게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