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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역시 표석이 없으며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능 안 백호(白虎)세 기슭 의 능 은 비단 능의 형태가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송죽과 잡목이 뒤섞여 나고 능 위에 뿌리를 내려 능 안쪽까지 파고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탄식하는 것은 우선 말하 지 않더라도 추모하는 후손들은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니 빨리 전을 수호하 는 하인에게 명을 내 려 우선 나무라도 먼 저 베도록 했습니다. 일성왕과 지 마왕의 능은 옛말에 서로 해목령(蟹目嶺) 아래에 있다고 전하기 때문에 능의 형태 가 있 는 곳을 찾아보았더니 한능은 포석정 동남쪽 건저지(乾渚池) 북쪽 가장자리 에 있 는데 능 윗부분이 함몰되어 소나무 뿌리가 뻗어 내렸기 때문에 역시 베어내 게 했 으며 한 능의 형태는 해목령 아래 장전동에 있는데 능의 형태가 무너지고 소나무 가 나 있으며 능 안에 돌을 쌓아 흙을 두어 장사를 지냈는데 무식한 백성들 이 돌 을 빼어가버려 그 형태를 알려고 해도 완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옛 왕릉이 있는 데도 고의로 무너뜨린 것이 분명하여 그 정상을 감추기가 어려우니 먼 고장 의 민 심이 비록 사납다고는 하지만 그 조상을 소급해 생각해 보면 모두 왕의 백 성인데 이처럼 능의 형태를 무너뜨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 죄를 따지자면 만만 통 분합니 다. 본전은 나라에서 숭봉하는 것이 과연 어떠합니까? 이조에서 참봉을 차출해 서 기 한이 차면 승천(陞遷)하며 절목(節目)을 모 두 숭인전에 의해 종행하라는 일 을 본 조에서 복주(覆奏)해서 판하(判下) 한 것이 이미 몇 년이 되었는데도 본도와 본부 에서 미적거리며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호군은 으레 70명이라고 하지 만 모 두 군정(軍丁)으로 빼앗겨 40명이 못되며 또 복호(復戶) 5결(結)과 아록(衙 祿) 3결 이 있다고 하지만 민 결(民結)은 작부전세(作夫田稅) 6두(斗)의 쌀을 받아서 쓰고 있으며 대동(大同)은 관에 바치는 전관이 요미(料米)및 마태(馬太)는 반드시 대동 으로 회감(會減)하여 창환(倉還)으로 이전하는 쌀과 콩은 태반이나 축이 납니다. 기타 여러 가지 절목은 원래 거론하지 않더라도 봄가을 제사와 보통 입직 (入直) 할 즈음에 공궤(供饋)할 길이 없어서 모양을 이루지 못하며 전묘의 제관(祭 冠) 제 복(祭服) 포진(鋪陳) 지의(地衣)제기(祭器) 목두(木豆) 죽변(竹籩)과 동서 재실의 지의, 죽단(竹簞) 등물은 해가 오래되어 낡고 부수어졌으며 동서 재사의 바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