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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왕 신도비문 가운데 잘못된 곳을 추론(追論)함-시말(始末)을 뽑은 것 이 미 진하므로 우 선 그대로 둔 다 박봉시(朴鳳始)지 음 왕(王)의 성(姓)은 “박(朴)”이라고 한”박(朴)”자 아래에 마땅히 씨(氏)자가 있어야 한다. 호(瓠) 자는 아래 글에 호공(瓠公)의 호자가 있으니 연달아서 쓸 필요가 없으며 , 휘(諱) 석 자 혁거세는 지금 세상의 뜻이니 이 역시 말해야 한다. 선도성모는 제실(帝室 )의 딸 이라고만 하였는데 제실은 유씨(劉氏)의 한(漢)나라를 말한다. 시조(始祖)의 어머니는 생각건대 반드시 유씨일 것인데 여기서는 일컫지 않았으 며 오봉 (五鳳)원년 아래에 마땅히”갑자(甲子)가 있어야 하며” 하사월(夏四月)”아래에 마 땅히 병 진(丙辰)이란 말이 들어가야 한다.”“호는 선도(仙桃)이다”의 호자는 왕(王)자로 고쳐야 하며 오릉(五陵)은 2성(聖)과 3왕(王)의 능인데 이 역시 빠졌다. “대호(大瓠)가 상 서를 알 렸다〔大瓠呈祥〕”로 고쳐야 한다. 팔대군은 혹 신라왕을 일컬으며”욱(勖)”자는 경애왕의 후손 위응(魏膺)인대 욱자 와 음이 서로 같아서이다. 경애왕이 왕위를 잇는 즈음에 이 여덟 아들을 봉한 것이다. 구 구한 관 견(管見)이 이와 같은데 조상서(趙尙書)에게 의논하지 못하였으니, 탄식함을 이길 수 있 겠는가? 삼가 상고하건대, 팔대군을 나누어 봉했다는 설이 분분하여 일치되지 않고 있다. 유리왕 의 아들을 봉했다는 것은”나누어 다스리게 했다”는 글에 얽매인 것이요, 경애왕 의 아들 이라고 하는 것은 신라왕 욱(勖)의 자(字)가 위응(魏膺)과 음이 같기 때문이다. 그 고을 에 봉한 것과 연대를 따져보면 반드시 신라가 삼국을 통합한 후의 일이어서 경명 왕의 아 들이라는 설이 그럴듯하기 때문에 비문에 경명왕으로 썼으나 명확한 증거가 없으 니 어떻 게 단정하겠는가? 명태조도”선조를 모른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선계(先系)가 분명하지 않으면 한 마디로 모른다고 해도 의리(義理)에 해롭지 않은데 어찌 의심나는 의논으로 단정하겠는가 ? 내가 여러 의논을 널리 수록한 것은 참고에 대비한 것으로 만약 누가 팔군이 어느 왕 의 아들 이냐고 묻는다면 반드시”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