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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보인다고 변명한다 라고 하였다. 삼가 상고하건대 유리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짐(朕)에게 두 아들이 있으 나 그 재능이 탈해에게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모든 사서 에 다 실려 있으나 그 밖에 여섯 아들이 있다는 기록은 어느 사서에도 없다. 함 양보에 실린 유리왕의 팔공자의 설이 어느 사서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으나 두 아 들 이 외의 여섯 아들이 있다는 말이 과연 사서에 실려 있다면 유리왕이 어찌 여 덟 아 들이라 말하지 않고 단지 두 아들이라고만 말하였겠는가? 이는 유리왕을 속이는 것이다. 탈해왕이 박씨의 종척들로 하여금 주군을 다스리게 했다면 반드시 유리왕의 여덟 아들이란 실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탈해왕은 남해왕의 사위이니 시조왕 남해왕 유리왕 3세(世)로 아들과 손자 모두 아내쪽의 종척 지친(至親)인데 단지 유 리왕의 종척만 봉했다면 반드시 유리왕의 종척이라고 해야지 어찌 범범하게 종척 이라고 말해서탈해왕이 어찌 처숙(妻叔) 처생(妻 甥)에게는 박하게 하 고 유독 없는 처질 (妻姪)들에게만 후하게 했겠는가? 결코 이 런 이치는 만무하다. 이는 탈해왕 을 속 이는 것이다. 유리왕의 두 아들은 여러 사서에 다 실려 있는 바인데 그 후손들이 이제 억측해 서 혹 다른 빈어(嬪御) 소생이라느니 혹은 두 아들 이외에 다른 소생이 없 는 줄 알겠느냐는 등 스스로 억지 말로 수천 년 전의 일을 지어내어 없는 여섯 아들을 들먹인다. 또 함양보에서는 근거 없는 유리왕의 여덟 아들을 내용에 넣어 여러 사서에 없는 일로 어지럽혔으니 이는 팔공자를 속이는 것이다. 탈해왕이 범범하게 종척 박씨라고 한 것은 반드시 유리왕의 아들일 것이다 . 역년 을 계산하여 37대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수천 년 후 억측 단정해서 팔 공자를 37대라고 한다면 여러 파 박씨의 여덟공자 이후의 세계(世系)를 댈 수 없는 것 은 어찌 억측 단정해서 분명한 증거로 삼지 않은가? 또 여러 파의 봉지(封地)를 고찰해 보면 밀양은 본래 추화군(推火郡)-이하 는 모 두 박동현(朴東顯)의 기록에 보인다.-이었는데 공양왕이 증조비 박씨의 출 생 고 을이라 하여 지금의 이름을 고쳤으며 고령은 유리왕이 나누어 다스리게 한 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