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략(史略)》 을 지으면서 최치원의 예를 따라서 역시 모두 왕이라 썼으니 대 개 변 경해서 호칭을 높이고자 해서이다. 서거정(徐居正)은 시조 이하부터 모두 왕이라 일컫고 국호는 신라라 했기 때문에 지금 연보에도 역시 왕호(王 號)를 더했 다. 연 보를 짓는 것이 대개 박씨의 소원록(遡源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박씨가 아니 면 쓰지 않았다. 시조왕(始祖王) - 이름은 혁세(赫世) 재위(在位) 61년 ○갑자(甲子) 원년(元年)-한선제(漢宣帝) 오봉(五鳳) 원년-여름 4월 병진( 丙辰)에 박혁거세(朴赫居世)가-혹 향언(鄕言)으로 왕을 말한다.-즉위하였다. ○이보다 앞서 고조선의 유민(遺民)들이 동해(東海) 산골에 나뉘어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첫째는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으로-지금의 남암 사(今曇巖寺)이다.- 그 촌장은 알평(謁平)인데 처음 호암봉(瓠巖峰)으로 내 려왔다. 둘째는 돌산(突山) 고허(高촌虛村)으로 그 촌장은 소벌도리(蘇伐都利)로 처 음 형 산(兄山)으로 내려 왔었다. 셋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으로-지금의 장복부 (長福部)이다.-그 촌장은 구례(俱禮)로 처음 이산(伊山)으로-또는 개차산( 皆此山) 이라고도 한다.-내려왔다. 넷째는 취산(觜山)진지촌(珍支村)으로-지금의 통선부 (通仙部)이다.-그 촌장은 지백호(智伯虎)인데 처음화산(花山)으로 내려왔다 . 다섯 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으로-지금의 가덕부(加德部)이다.-그 촌장은 지타 (祗沱)인데 처음 명활산(明活山)으로 내려왔다.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 (高耶村)으로-지금의 임천부(臨川部)이다.-그 촌장은 호진(虎珍)인데 처음 금강산 (金剛山)으로 내려왔다.-혹은 육조(六祖)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도 한다.- 이들을 진한(辰韓) 육부장(六部長)이라고 한다. 그당시 임금이 없어 고민하다가 3일 동안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서 하늘에 빌었다. 한선제(漢宣帝) 지절(地節) 원년 (元年) (壬子 서기전 9년)에 고허촌장(高虛村長) 소벌공(蘇伐公)이 양산(楊山) 나정 (蘿井) 을 바라보았더니-나정은 부(府) 남쪽 7리 지점에 있다.-나정 옆 숲가에 백마(白 馬)가 있어-혹은 선 인(仙人)이라고도 한다.-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형상이 보였 다. 즉시 가서 보았더니 말이 갑자기 보이지 않고-혹은 용마(龍馬)로 시조 (始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