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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동옥저(東沃沮) 임금이 좋은 말 20필을 바치면서 말하기를”우리 임금 이 남 한(南韓)에 성인(聖人)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감히 바치는 바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삼국(三國)이 모 두 전쟁을 숭상했으나 왕만은 유독 인의(仁 義)를 행해 위력 (威力)에 힘쓰지 않아서 멀고 가까운 여러 나라가 그 소문을 듣고 귀부(歸 附)하기 를 원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 61년 갑자 3월에 왕이 훙(薨)하니 수는 73세이었다. 태자(太子) 남해(南海 )가 즉 위했다. 이해에 왕을 국도(國都) 남쪽에다 장례하고 왕이 훙한 7일 만에 왕 비 알 영 역시 훙(薨)하였다. 남해왕(南解王) 후부터 박씨가 8세 동안 왕위를 전하였 다.-처음에는 10세(世)오 지었다.-석씨(昔氏)와 김씨(金氏) 두성이 서로 서라벌 (徐羅伐) 국호를 이어가다가 지증왕(智證王) 때에 이르러 신라(新羅)로 고 쳤는데 역년(歷年)이 모두 9백 92년이었는데 오직 박씨만 지금까지 번성하여 우리 나라의 큰 성씨가 되었다. 그 근원은 경명왕(景明王) 때 여덟 공자(公 子)로부터 시 작되었 는데-처음에는 경명왕(景明王)의 아들 여덟 대군(大君)이라고 지었다.-장자 는 밀 양(密陽) 다음은 고양(高陽) 셋째는 속함(速咸, 넷째는 죽성(竹城)인게 후에 밀양, 고령,함양,죽산은 파가 되었다. 다섯째는 사 벌(沙伐),여섯째는 완산(完山), 일곱째 는 강남(江南), 여덟째는 월성(月城)인데 전(傳)하여 상주(尙州), 전주(全州 ), 순천 (順天), 경주(慶州)의 관향이 가장 번성하며 그 이외의 별보(別譜)가 매우 많아서 다 기록하지 못한다. 아아, 왕이 왕 노릇한 것이 어찌 참으로 신 이(神異)하고 인성(仁聖)하지 않 았던가? 왕은 삼한(三韓)에 맨 처음 나온 임금으로 하늘이 처음 내려주면서 이상한 상서 (祥瑞)가 있어 마치 간적(簡狄)이 큰 알을 삼키고 설(?)을 낳고 강원(姜嫄)이 발자 취를 밟고 기(棄)를 낳은 것과 같았다. 젊 은 나이에 임금의 자리에 올라 크 게 나 라를 창업하여 관인(寬仁)하고 성(聖)스러워 위대함을 기약하고 하늘이 표 준(表準) 을 내려 나라의 도읍(都邑)을 세웠는데 제도가 매우 공고(鞏固)했다. 농상( 農桑)을 매우 부지런히 권장하고 이웃나라에게 욕을 당하고도 그 초상을 당해 정 벌하지 않아서 먼데 사람이 복종해 오도록 했다. 스스로 무력을 쓰지 않아 낙랑(樂 浪) 사 람들이 그 착한 풍속에 감탄하여 국경을 침범했다가 돌아갔으며 변한(弁韓 )이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