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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 왕자(王字)란 큰 호(號)를 어찌 한때 신주(神主)에 잘못 쓴 것을 가지 고 또 다시 만대에 전할 비문(碑文)에 써서 전하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성명(聖明)의 존경하는 성대한 뜻과 나라 사람들의 공의( 公議)를 모아 빨리 광전(廣前을 거행하시고 덕음(德音)을 내리시어 전조(廟前)의 위판(位 版)과 비석의 전각(篆刻)을 한결같이 향축에 의하여 특별히”신라시조왕(新 羅始祖 王)”이라 쓰고, 비문 역시 숭인전 숭의전의 예에 의해서 사신(詞臣)으로 하여금 지어 올리도록 해서 일의 체모를 더욱 높여야 전장(典章)에 빠짐이 없어서 성조 (聖朝)의 지극히 어진 성덕(盛德)이 만세에 빛이 나지 않겠습니까? 신들은 황공하 게 죽음을 무릅쓰고 간절히 아룁니다. 신미년(辛未年) 7월 22일 동부승지(同副承旨) 조명정(趙明鼎)이 담당하여 입달(入 達)함 비답(批答)하기를 “상서를 보고 잘 알았다. 진달한 바는 묘당으로 하여금 아뢰어 처리하게 하라.”하였다. 처음 비답에는 “상서에 의해서 시행하라〔依施〕”고 되어 있었는데 다시”아뢰어 처리하게 하라〔稟處〕”고 고쳐서 내렸으니, 이는 일 의 체 모를 중시한 성대한 뜻에서 였다. 신미년 8월 20일 계 축(癸丑)에 대신(大臣)과 비국당상(堂上)이 입대(入對 )할 때 영의정(領議政) 김재로(金在魯)가 아뢰기를”이는 부사직(副司直) 박필정(朴 弼正)등 의 상서(上書)입니다. 그 상서에 이르기를 “신라 시조왕의 숭덕전(崇德殿)을 숭봉 (崇奉)하는 방도가 숭인전 숭의전과 같은 과 같은 규례입니다. 그런데 다만 임진 왜란 후 위판(位版)을 고쳐 만들 때 다만「신라시조(新羅始祖)」라고만 쓰고 「 왕 (王)」자를 쓰지 않았는데 나라에서 내려주는 축문에는 쓰고 위판에는 쓰지 않아 서 크게 의문(儀文)에 어긋나며 또 을축년 예조(禮曹)의 복달(覆達)에 의하 여 장 차 비석을 세워야 하 니, 청컨대 위판과 비문에 모두 「신라시조왕」이라 쓰 고, 비 문 역시 숭인전과 숭의전의 예에 의하여 사신(詞臣)으로 하여금 지어 올리 게 해 서 일의 체모를 중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축문에는 왕자를 쓰고 위 판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