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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답(批答)하기를”상서(上書)를 보고 잘 알았다. 상서의 내용은 해조(該曹)로 하여 금 아뢰어 처리하게 하라.”하였다. 전승지(前承旨) 박필정(朴弼正) 등의 상서(上書) 삼가 아룁니다. 예로부터 제왕(帝王)으로 백대(百代)에 남을 큰 공(功)을 세우는 자는 반드시 백대 후까지 높은 보답을 받나니, 평양(平壤)의 숭인전(崇仁 殿)이나 마전(麻田)의 숭의전(崇義殿)이 모두 이런 뜻입니다. 신등은 삼가 생각하건대 신라 시조왕은 하늘이 내린 신성한 임금으로 동경 (東京) 에다 처음 나라를 세우신 아름다운 공적을 세우신 실로 삼한에 맨 먼저 나 온 임 금이십니다. 이에 우 리 세종대왕(世宗大王) 때에 묘전(廟殿) 창건하기를 명하여 봄 가을 중월(仲月)에 향(香) 축폐(祝幣)를 내려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셨으 며 우 리 경종대왕(景宗大王)께서도 특별히 숭덕전이란 호를 내려주고 인하여 자 손 가 운데서 참봉(參奉) 2명을 차출하여 전수(典守)하게 하셨으니, 이는 대개 숭 인전(崇 仁殿) 숭의전(崇義殿)과 동일한 규정이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습니까? 어 찌 성 대하지 않습니까? 다만 지난 임진왜란(壬辰倭亂) 후 위판(位版)을 다시 만드는 날에 다만 “신 라시조 (新羅始祖)”라고만 쓰고 “왕(王)”자를 쓰지 않았는데 나라에서 내려주는 축문(祝 文)에는 “신라시조왕(新羅始祖王)”이라고 씁니다. 왕호(王號)를 넣고 삭제하 는 것 이 얼마나 중대한데 축문에는 왕자를 쓰고 위판에는 쓰지 않으니, 이 얼마 나 크 게 의문(儀文)에 어긋나고 체모(體貌)에는 손상되는 일입니다? 대개 난리 통 에 급 한 나머지 잘못된 것인 듯하며 또 더군다나 막을축년 성명(成命) 후 해조( 該曹)에 서 복달(覆達)하여 장차 비석을 세워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수도 (隧道) 의 비석은 마땅히 사승(史乘)과 국전(國典)에 의거한 위호를 바로잡아 써 야하니, 신등이 우러러 아뢰어 바로 잡아주기를 청하는 일을 그만 둘 수 있겠습니 까? 아, 신라 시조왕의 정위(正位)와 공업(功業)은 천 년 만년 역사책에 찬란하게 빛 이 나 서 열성조(列聖朝)에서 예우(禮遇)하고 높이 받드는 것이 천고에 뛰어 납니 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