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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떨어져 나라 사람들이 합장을 하려고 하다가 뱀의 변괴를 인해서 마침내 나누 어 장례했다고 하였다. 삼가(三嘉) 사람의 보첩에는 말하기를”왕이 훙한 지7일 만에 왕비가 훙하여 사릉에 장례했다.”라 고 하였다. 그렇다면 동경지에 승 천했다 고 운운 한 것은 승 하(昇遐)했음을 말한 것이요 오체가 흩어져 떨어졌다고 말한 것은 왕비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잘못한 것이다. 합장을 하려다가 뱀의 요괴 로 인 해 마침내 나누어 장례했다는 것은 나라 사람들이 왕비를 합장하려고 했으 나 뱀 의 요변으로 인해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마침내 두 능으로 나누어 장례했다는 말이 다. 이렇게 논한다면 사릉(蛇陵)이란 칭호는 두 성인을 나누어 장례하던 생 긴 말 이요 오릉이란 칭호는 남해왕 유리왕 파사왕을 원내에 장례한 후에 생긴 말이다. 비록 그러하나 이제 능의 제도를 보면 중앙의 두 큰 능은 두 성인의 능인 듯하고 그 밖의 세 능은 혹 질고 혹 좁아서 모두 왕릉 같지 않으니 실 로 알 수가 없다. 옛날 불초자가 미처 선군 계시던날 의논을 받들지 못하고 이제 영원히 천 고(千古) 의 세월이 격하게 되었으니, 아 슬프다. 기사년(己巳年) 가을 7월 불초자 봉시(鳳時) 손을 씻고 피눈물을 흘리며 상체헌 (常棣軒)에서 쓴다. 후손 고령(高靈) 후인(後人) 박봉시(朴鳳時) 지음 신라(新羅) 시조왕기(始祖王記) - 뽑은 것임. 신라(新羅) 시조대왕(始祖大王)의 성(姓)은 박(朴)이요 휘(諱)는 혁거세(赫 居世)이 다. 한(漢)나라 선제(宣帝) 지절(地節) 원년(元年) 갑자(甲子)에 양산(楊山 ) 기슭 나정(蘿井)에서 출생하였다. 그때 나라에 임금이 없는 것을 고민하여 3일 동안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하늘에 빌었더니, 오색구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나정을 덮었다. 들에 있던 사람이 말하기를”용마(龍馬)기 우물가에 무릎을 꿇고 하늘로 날아올라 남산(南山)으로 갔습니다.”라고 하였다. 후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 성스런 박이 우물 속에 있고 그 안에서 신성한 아이가 나왔는데 이 용마는 시조가 타기 위해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