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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 서로 모순되게 했는가? 대개 편방이란 것은 오른쪽을 확장해 명기(明器)의 방(房)을 사용하는 것이 다. 비 록 한나라의 인산(因山)의 제도가 어떤지 모르지만 편방이라 하였으니 부형 (斧形) 방제(防制)이니, 좁고 길지 않고 어떻겠는가? 그러니 권씨(權氏)가 이른바 시조가 살던 당시에 이미 중국 사람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제도를 모 방하여 왕을 장례했다고 한 말이 옳다고 하겠다. 또 동경지에 세 왕의 능이 모두 사릉(蛇 陵 ) 안에 있다고 하였는데 별도로 다른 능이 없으니 어찌 세 왕과 병칭(竝稱)하여 오릉이라 하여 반드시 오체(五體 )의 설 을 거론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괴설(怪 說)을 좋아한 것이 심하다고 하겠 다. 이 치에 맞는지 여부는 살피지 않고 오직 괴이한 설만 믿고 이런 오릉의 설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모두 동향(東向)이란 것은 더욱 망언(妄言)이다. 이 능이 비 록 평 지에 펼쳐져 있으나 사실은 산맥이 문천(蚊川) 남쪽 도장산(道長山)에서부터 뻗어 내려와 곧장 서악(西岳)에 닿으니 묘좌(卯坐) 유향(酉向)이 이치상 반드시 그런 것이지 어찌하여 행룡(行龍)이 다한 곳에 배수임수(背水臨水)하여 마치 말을 거꾸 로 탄 형국처럼 되겠는가? 더군다나 신라 도성의 궁궐은 모두 서향인데 궁성(宮 城)에서 지척(咫尺)으로 가까운 땅이 이 능만이 유독 동향을 하고 있겠는가 ? 시조가 돌아가시고 남해왕(南解王)이 즉위한 3년 봄에 처음으로 시조의 사당을 세워 사시(四時)로 제사를 지냈다. 이때에야 문물이 비로소 구비되었으니 남해왕 을 장례할 때에는 그 친함이 반드시 이처럼 허황되고 괴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능의 제도를 보면서 억측하자면 시조를 먼저 장례하여 그 용(龍)이 다 한 연 후에 다음 왕을 계속 장례하고, 그 후에 또 좌우에 장례했는데 오른쪽이 좁 고 작 으며 한 능은 가로가 길어 제도가 마치 북을 향한 것 같았던 것이다. 아니 면 세 큰 능은 모두 유향(西向서향)이고 두 작은 능은 가로놓여 자향(子向:북향)으 로 해 서 북쪽으로 흐르는 수세(水勢)에 맞춘 것 이 아닐까? 그렇다면 가장 서쪽 시조 능 밖이 비록 어느 왕의 능인지 모르지만 지도(地道)와 인사(人事)로 추측 하건대 남해왕이 다음이요 유리왕이 왼쪽, 파사왕이 오른쪽이요, 그 오른쪽 역시 혹 지마 왕(祗摩王) 일성왕(逸聖王) 아달라왕(阿達羅王) 세 왕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