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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에 스스로 왕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후백제(後百濟)라 하였다. 병신 년 9우 러 고려에게 패해 등창이 나서 죽었다. 김부(金傅)를 왕으로 세웠다. 이보다 앞서 견훤이 교외에 이르러 왕을 시 해하자 신라에서 고려에 급함을 알렸다. 고려에서는 공훤(公萱)등을 보내 군사 1만 명으 로 구원하게 하였으나 견훤의 군사가 왕도(王都)에 이르기 전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때 왕과 부인이 빈 첩(嬪妾)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서 술잔치를 열고 즐겁게 놀다가 갑자기 견훤의 군사가 이르렀다는 말을 들었다. 왕과 부인이 도주하 여 이 궁(離宮)으로 돌아갔는데 시종(侍從) 궁인(宮人) 광대들이 모두 붙잡혔다. 견훤의 군사가 크게 약탈하면서 왕궁으로 들어와 왕을 찾아내어 군중(軍中)에 두고 는 자 진(自盡)하라 협박하고 왕비를 강제로 욕보이고 부하들을 풀어 빈첩(嬪妾)들 을 욕 보였다. 그리고는 김 부(金傅)를 즉위시키고 왕의 동생 효렴(孝 廉)과 재신(宰 臣) 영 경(英景)등을 포로로 잡고 자녀와 관리들, 무기 보화를 모조리 거두어 돌 아갔다. 고려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조위하고 친 히 정기(精騎)를 이끌고 공산(公 山) 숲 속에서 견훤과 크게 싸우다 불리하여 견훤의 군사에게 포위당해 매우 급하 게 되 자 대장 신숭겸(申崇謙)이 대신 죽음으로써 고려왕이 겨우 몸을 빼내어 살았다. 김부가 즉위하여 여러 신하들과 함께 통곡하며 경애(景哀)란 시호를 올렸 다. 능 (陵)은 남산(南山) 해목령(蟹目嶺) 을좌(乙坐)에 있다. 경순왕(敬順王 이름은 부(傅). 성은 김씨(金氏) 문성왕(文聖王)의 후손으로 재위 9년이다. ○을사(乙巳) 9년-후당(後唐) 명종(明宗) 청태(淸泰) 2년 고려 太祖 18년- 경순왕 (敬順王) 김부가 나라를 가지고 고려에 항복함으로써 신라가 망하였다. 경순왕이 나라가 미약하다 하여 항복하려고 하자 구신(舊臣)들이 더러 따르 지 않 았다. 한 왕자(王子)가 간(諫)하기를”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늘에 달 려 있 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힘을 합쳐 죽을 각오로 싸우다가 나라와 함께 죽는 것이 예(禮)입니다.”하니, 왕이 불가하다며 말하기를”덕이 없는 내가 백성들 부자 형제 (父子兄弟)를 들판에서 죽어 백골이 뒹굴게 할 수는 없다.”하고는 고려에 항복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