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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道詵)이 그 문 앞 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탄식하기를”이곳에서 마땅히 성인 (聖人)이 나오겠다.”하니, 왕륭이 듣고는 맨발로 나와 맞아들여 함께 송악 산(松嶽 山)으로 올라갔다. 도선이 아래를 굽어보다 봉서(封書) 한 통을 왕륭에게 주면서 말하기를”공(公)이 명년에 귀한 아들을 낳 을 것인데 그 아이가 자라거든 이 글을 주시오.”라고 하였다. 이런 사실을 모조리 비밀에 붙여서 세상에서 알지 못 하였는 데 과연 아들을 낳았으며 그곳에 집을 지으니 바로 헌강왕(憲康王) 3년 정 유(丁酉) 이다. 신성한 빛과 자 색 기운이 집안을 감돌고 뜰에 가득하여 그 형상이 마 치 교 룡(蛟龍)이 깃든 듯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용안 일각(龍顔日角)에 턱 이 모 나고 이마가 넓었으며 기국(器局)과 도량이 깊고 넓었다. 목소리가 크고 성품이 관대해 세상을 구제 할만한 아량이 있었다. 17세때 도선(道詵)이 다시 와서 보기 를 청하며 말하기를”마침 백륙(百六)의 기회를 만나 말세의 백성들이 공의 구제 를 기다리고 있다.”하고는 군사를 내라고 하면서 군대를 내어 진(陣)을 치 는 법, 산천(山川)의 지형을 이용하는 법, 감통 보 우(感通保佑)하는 법등을 고해 주었다. 궁예 밑에서 많은 공을 세워 추대를 받아 나라를 세우니, 바로 고려 태조 (高麗太 祖)이다. 경애왕(景哀王) 이름은 위응(魏膺이다. 경명왕(景明王)의 동모제(同母弟)로 재위 3 년이다. ○정해(丁亥) 3년-후당(後唐) 명종(明宗) 천성(天成) 2년-겨울, 견훤(甄萱)이 침입 해 왕도(王都)를 함락하고 왕을 시해(弑害)했다. 견훤은 상주(尙州) 가은현(加恩縣)사람으로 본성(本姓)은 이씨(李氏)이다. 아버지 아자개(阿慈介)가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후에 집안을 일으켜 장수가 되었다. 아들 넷을 두었는데 모두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었다. 견훤이 태어나서 아버지가 들일 을 하고 어머니가 들밥을 내오느라 숲 아래에다 눕혀놓았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 을 먹였다. 15세 때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부르면서 비장(裨將)을 따라다니며 나 라를 지켰다. 그러다 신라의 정사가 어지러워진 것을 보고 마침내 여러 도둑들과 힘을 합쳐 군현(郡縣)을 겁략하여 군사 5천 명을 얻어 무진(武珍州)에 웅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