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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는가? 우리 열성조(列聖祖)께서 삼각지의(三恪之義)를 잘 따른 것이 천하 후세 에 빛이 나게 된 것이다. 이에 우리 잔약한 후손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성대한 의식을 오늘날 보게 되었으니 참으로 크 게 빛 나는 일로 유감이 없 게 되었다. 이제 세욱(世旭)이 스스로 재정을 마련하고 번거 로운 것을 산삭(刪削)하여 요점을 정리해 인쇄해서 널리 배포하려고 계획한 것도 훌륭한 일이다. 성조(聖祖)의 후손이 안으로는 조정에, 밖으로는 팔도 각지에 있는 숫자가 천억 만 명뿐이 아닌데 팔대군(八大君)이 분봉(分封)된 후 근원은 같았으나 파가 다르 고 뿌리는 같으나 가지가 다른데다가 세대(世代)가 점차 멀어지고 보첩이 잔결 (殘缺)되어 노(魯)나라와 위(衛)나라가 처음 한 형제에서 갈라진 것을 모르 고 은 (殷)을 상(商)으로 조손(祖孫)대에 이름을 바꾼 것을 모르는 것 과 같다. 만 약 이 기록을 집집마다 보배로 보관하고 사람들마다 항상 본다면 친애하는 마음이 모르 는 사이에 뭉게뭉게 일어나서 전일 친한 이를 소원한 자로 여기던 것이 지금은 소원한 자를 친한 자로 여기게 될 것이고 옛날 가까운 데도 멀리 여긴 자가 지금 부터는 먼 자를 가깝게 여겨져 실로 정자(程子)가 말씀하신 사람의 마음을 모으 고 종족(宗族)을 거두어 풍속을 후하게 할 수 있다는 가르침과 같게 될 것이니 어찌 우리 종중의 큰 다행이 아니겠는가? 자손 가운데 시종 이 일에 정성을 다한 자는 태운(泰運)보다 더한 자가 없으므로 내가 시(詩) 몇 구절을 지어 준 것 은 나 름대로 뜻이 있어서이다. 아, 내가 지난번 상소하던 날, 친상(親喪) 중이어서 여러 사람의 의논을 듣 지 못 해서 남쪽으로 계림(鷄林)을 바라보면서 잊지 못하는 일념이 오랫동안 선 도(仙挑 山) 아래에 걸려 있었다. 이제 졸문(拙文)으로 전날의 소원을 갚으니 그 참람한 죄를 용서받을지 모르겠다. 경진년 시월 기망(旣 望 ) 말예(末裔) 정헌대부(正憲大夫) 전행지중추부사(前 行知中 樞府事) 박치화(朴致和) 삼가 서(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