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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왕(南海王)-재위(在位)20년 ○을축(乙丑) 원년(元年)-원시(元始)5년-왕비(王妃)를 운제부인(雲梯夫人)으 로 봉 (封)하였다. 또는 아파부인(阿婆夫人)이라고도 한다. ○병인(丙寅) 2년-왕망(王莽) 거섭(居攝) 원년-봄 정월 처음으로 시조의 사당을 세웠다. ○동경기(東京記)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시조의 사당은 경주부(慶州府) 남쪽 월남리(月南里)에 있다. ○우리 세종(世宗) 11년 기유(己酉)에 사당을 세워 매년 춘추(仲月)에 향 (香) 축 (祝)을 내려 제사한다. 또 상고하건대 경종(景宗) 3년 계묘(癸卯)에 숭덕전 (崇德殿) 이라 사액(賜額)하고 또 참봉(參奉) 2명을 두어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무진(戊辰) 4년-왕망 초시(初始) 원년-봄 정월(正月)왕이 장녀(長女)를 석탈해 (昔脫解)에게 시집보냈다. 석탈해는 본래 파사나국(婆娑那國)-혹은 다파 국(多婆 國), 또는 용성(龍城)사람이라고 하는데 왜국(倭國) 동북쪽 1천리 되는 곳 에 있 다.-그 나라 함달파사(含達婆娑)가 여자나라 왕의 딸을 왕비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이 알을 낳 은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버려야 한다 고 하자 왕비가 알을 비단으로 싸서 보물함과 함께 궤짝 속에 담아 배에 실 어 떠 나 내려 보내면서 빌기를”인연이 있는 곳에 닿아 나라를 세우거라.”라고 하였다. 처음 금관국(金官國) 해변에 닿았는데 사람들이 괴이하에 여겨서 취하지 않 아 진 한(辰韓) 아진포구(阿珍浦口)에까지 흘러왔다. 한 노파가 건져서 상자를 열 자 아 이가 나오므로 거두어 길렀다. 자라자 궤짝이 처음 흘러올 때 까 치(鵲)가 울면서 따라왔기 때문에 새조(鳥)자는 버리고 석(昔)을 성씨로 삼고, 궤짝을 벗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脫解)라고 하였다. 탈해는 모습이 빼어나게 아름답고 지혜가 남달랐는데 고기 잡는 일을 하였 다. 기 르는 노파가 말하기를”너는 골상(骨相)이 뛰어나니 마땅히 열심히 배워 이름을 날리거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탈해가 학문에 정통하고 겸하여 지리(地理)에 도 능 통하였다. 양산(楊山)에 있는 호공(瓠公)의 집이 길지(吉地)인 것을 알고 꾀 를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