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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찮은 분노도 다스리고 참지 못해서 반드시 기회를 엿보아 보복을 하려 고 하는데 더군다나 큰 분노심이겠는가? 어진 사람이라 하여 분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분노를 상대방에게 맡기고 나는 태연하게 처리해서 잘못이 상대 방에게 있고 옳음이 나에게 있도록 처리한다. 그러니 우리 시조왕의 넓고 큰 도 량으로 언제 일찍이 분노심을 품기라도 하셨던가? 그런데 마한에 초상이 나 자 어 떤 자가 망령되게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 성인(聖人)의 마음을 헤아려서 보복을 할 계책을 올리자 시조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니, 대왕의 말씀이 참으로 훌륭 하다고 하겠다. 왕께서는 처음부터 분노하지 않으셨고 이제 관대한 말씀을 하시 어 인(仁)을 베풀고 예(禮)를 베푸신 성덕(聖德)의 일은 어찌 억지로 분노를 참고 억제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 후손된 자들은 시조의 마음을 본받 아서 분노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아아 , 우리 일가들은 시조의 어찌 이런 마음을 본받아서 실천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병진(丙辰) 53년-건평(建坪) 2년 백제(百濟) 시조(始祖) 원년(元年)-동옥 저(東沃 沮)가 사신을 보내 좋은 말 20필(疋)을 보내면서 말하기를”우리나라 임금이 남한 (南韓)에 성인(聖人)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냅니다.”라고 하였다. 옥저는 고구려 개마산(盖馬山)동쪽에 있다. 동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부 여(扶餘) 와 이웃하고 남쪽은 예맥(濊貊)과 접해 있는데 한나라 무제(漢武)가 그 땅에 다 일 찍이 현도군(玄도郡)을 설치하였다. 삼가 상고하건대, 성 명(聖明)한 왕이 덕(德)을 신중히 하면 사방 오랑케가 방물 (方物)을 바쳐오니, 그 때문에 성명한 왕은 먼 지방의 오랑캐를 회유(懷柔 )하는데 덕으로써 하지 군사력으로 하지 않으며 오랑캐가 복속(服屬)하더라도 바치 는 토 산품(土産品)을 좋아해서 뜰을 가득 채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이는 덕 을 베 푼 소치이다. 그래서 주(周)나라 목왕(穆王) 시대의 백랑(白狼)이나 한나라 무제(武帝) 때 의 완 마(宛馬)는 한갓 군사력으로 위협해서 이르게 한 것이어서 구하게 여길 것 이 못 되니, 이번 옥저(沃沮)에서 말을 바쳐온 것은 시조의 성덕(盛德)과 성교( 聲敎)에 감복해서 방물을 바치는 정성을 보인 것이다. 이는 이른바 덕을 베푼 소치 의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