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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기] 이사 정진탁 현경은 소소한 잡동사니들을 나지막한 종이 상자에 쟁이다가 낡은 장지문 틈으로 흘러들어온 햇살 한 조각에 잠시 눈길을 모두었다. 문짝이 꼭 들어맞지 않아 겨울이면 칼바람이 새악거리며 드나들던 틈으로 지금은 무던한 가을 해가 살짝 한 발을 걸쳐둔 것이다. 해마다 겨울 초입이면 문풍지를 붙이며 남편은 그때마다 이깟 틈으로 어찌 그리 황 소바람이 들오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곤 했다. 새 집 짓는 일이 성사됐을 때 그녀 역시 가장먼저이제외풍이없는집에서살겠구나하는생각에흐뭇해했다. 현경은 흩트려놓은 짐에서 잠시 손을 떼고 장지문을 잡고 비틀어진 틈을 골라보았 다. 하지만 잠시 자리를 잡는가 싶던 문은 그예 다시 바스락 틈을 키우며 햇볕 한 줌을 던져놓는다. 그 고집스런 모양이 어쩐지 이 집을 두고 새 집으로 이사하는 자신들에 대 한투정인듯싶어가슴한귀퉁이에알싸한마음이일었다. 옅은 그늘이 드리운 방안을 둘러보니 눈에 깃드는 정경이 새삼 모두 정겹고 애틋하 다. 새로 도배를 해야지 하며 벼르고만 말았던 보풀이 인 낡은 벽지와 여기저기 찢긴 자국을 메운 장판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예사롭지 않다. 작은 집을 남의 식구들이랑 나 눠쓸수밖에없었던서운한시절, 이곳에둥지를틀었다. 비록 낡고 작은 곳이었지만 마음 편한 우리 집이라 생각하며 기꺼운 마음으로 닦고 088 | 대학의 소리 방송국 - VOU 6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