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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일산의암센터의병실에서였다. 이전에그녀의모습을생각할수없을정도로지 친모습이었지만평안해보였다. 그로부터며칠후나는부고를받았다. 예정된일이라 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기 와선후배지인들과그렇게그녀를떠나보냈다. 87년은 정말 치열한 한 해였다. 입학하자마자 총학에서는 민주화 투쟁을 시작했고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많은 학우들이 시위에 참가했고 문리대 앞에는 항상 대자보 가붙어있었다. 그때 우리는 바빴다. 매일 강습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민주화를 위해 움직이고 투쟁할 때 우리는 로비에서, 부스에서 혹은 카페에서 강습을 받았다. 어떤 이들(옆에 같이 있던 신사라고는 이야기 못한다…)은 우리를 보고 부르주아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매일 우리의 시간과 열정을 내어 학우들에게 다른 모습의 투쟁을 했던 것이라고생각한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기가 센 그녀를 떠올릴 것이다. 87년 벚꽃이 피기 전, 우리는 방송국에서 처음 만났다. 성희는 우리 기수 중에서도 튀는 아이였다. 1학 년 중에 화장을 하고 닭 벼슬처럼 머리를 세우고 나타난 이는 아나운서에 노성희 그 리고 피디에 이기민 이 둘뿐이었다. 성희는 대성학원에서 재수를 한 우리보다 한 살 나이 많은 동기였고 재수를 하지 않고 입학한 순진한 동기들보다 세상을 더 아는 아 이였다. 한가지그녀의말에따르면, 자기는혀는긴데발음이안된단다(참고로1학년 순진한 우리들은 재수를 해서 세상물정 많이 아는 성희가 34기 모 아나운서 언니를 선배도 아 니고 친구도 아닌 어정쩡하게 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훗날 그 둘은 같이 동침하는 사이가 되었다). 강습 때 35기 아나운서 부서는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나부랑 따로 모 일 때 그쪽에 끼고 싶을 정도로 그쪽 분위기가 좋았다.피디 부서인 우리 부서는 33기 박승준 형이 부장이었다. 황우창, 황윤기, 나, 이기민, 이렇게 4명이었는데 기민이가 항상 나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기에 우창이, 윤기, 나, 이렇게 3명이 다녔다. 080 | 대학의 소리 방송국 - VOU 6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