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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무렵에 군에서 제대한 서두범 형(44기 엔지니어)과 고(故) 김경철 형(44기 엔 지니어)은 새로운 매체의 출범을 준비했습니다. 신문방송학과 차원에서 기획했던 인 터넷 방송이 그것입니다. 두범이 형과 경철이 형은 VOU 출신으로, 태호 형은 신방과 조교 출신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 함께 iKHU.TV(이쿠티비)란 이름의 인터넷 방송이 개 국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웹PD ▲웹마스터 ▲VJ 등 3개 부서를 갖추고 공 식개국을준비했습니다. 저와 장원석(49기) 형, 손경희・김명은(49기) 언니는 인터넷 방송 1기 수습이었습니 다. 같은 시각 주희연(49기 엔지니어) 언니와 유정근 형(49기 PD)은 VOU 수습을 따로 겪고 있었습니다. 경희 언니는 VOU 수습으로 출발했지만 iKHU.TV 수습을 겸했습니 다. 때문에불운인지행운인지모르지만한번더힘든모니터를양쪽에서받아야했습 니다. iKHU.TV의 개국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산파 역할을 했던 태호 형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2선으로 후퇴했고, 경철이 형이 iKHU.TV 초대 국 장을 맡았습니다. 두범이 형은 웹마스터로 서버 구축을 책임졌고, VJ로 개국을 준비했 던 문헌규(44기) 형은 신수임(48기) 언니에게 VJ 바통을 넘겼습니다. 당시는 44기 형들 이 본격적으로 취업을 앞두던 시기로, 개국 작업에 올인할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혼란기였습니다. 결국두범이형이십자가(?)를지고초대국장겸웹마스터부장을맡 으면서어느정도자리를잡아갔습니다. 고민도 있었고, 변화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플랫폼으로 하는 방송국이라지만 제 작을 위해 최소한 편집기를 놓을 공간은 필요했습니다. 초기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던 신방과 랩실(정경대 4층)을 더는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VOU의 공간을 활용 키로했습니다. 이전까지실무실로쓰이던곳이었습니다. 이같은소식을전해들은태 호 형이 한걸음에 실무실로 달려왔습니다. 1만 원짜리 현금 다발을 품에 안고 말이죠 (뽑아 온 현금이 얼마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돈 때문에 VOU 안으로 흡수 통 합되는 것이 아니냐며 본인 돈으로라도 iKHU.TV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132 | 대학의 소리 방송국 - VOU 6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