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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데, 시간차로 삐삐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안전이 염려된 부모님들이 다 급하게 호출을 하신 것이다. 서둘러 통화를 하고, 진아와 선배들은 귀가를 위해 자리 에서 일어섰다. 일생이 냉철한 승준 형도“아~! 비빔면 체할 것 같아”하며 그때만큼 은멍한표정을보였다. 그러게. 그깟비빔면이뭐라고. 저렇게눈앞에서수천명의생사가갈리고있는데, 우리는 그저 조금 더 먹어보겠다고 그 난리를 피웠구나. 아직 입에서 채 가시지 않은 비빔면의매콤달콤한맛이무색해지는순간이었다. 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는 94년의 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 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내가 3학년이었던 그해, 가을에 열린 37주년 방송제는‘신한 국? 실한국’이라는제목의가십으로곳곳이썩어있는한국사회의병폐를꼬집었다. 2017, 지금도여전히… 3학년 방송제를 끝으로 우리는 실무 교체를 하고 방송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4학년이 되어서는 OB라는 이름으로 가끔 방송국에 들러 후배들을 격려하고 방송을 모니터했다. 졸업하고 학교와 방송국을 떠난 지 20년이 된 지금, 그 시절이 가끔 사무 치게그리워진다. 그리고 그 시절을 온전히 함께했던 나의 동기들…. 지구상 어느 오지에 떨어뜨려 놔도 주머니 깊숙이 간직한 절대숟가락을 꺼내 원주민의 밥그릇을 탐할 최강오지랖 대석, 한겨울 회기역 앞에서 털모자 눌러쓰고 군고구마나 팔기에는 쓸데없이(?) 잘생 긴 잉여비주얼 진호, 살얼음판 같은 신고식에서 욕 해보라는 선배에게“담배나 끄고 말해, 새꺄!”라고 외쳐 본전도 못 찾게 만든 걸크러쉬 경아, 나에게 방송국의 모든 남 자 선배는 그냥 선배, 동기는 동기, 후배는 후배일 뿐이라는 명언을 남긴 단호박 연애 세포박멸자 삼희, 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신형 삐삐의 진동에 자지러지느라 탁자 밑으 로 사라지곤 하던 엉뚱 귀염 지수, 홀로 집안에서 맞닥뜨린 도둑에게 가족들이 곧 오 니 어서 나가라고 아나운서 발성으로 타이른 간 큰 진아, 생방 시간 임박한 아나운서 102 | 대학의 소리 방송국 - VOU 6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