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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調)인데、 치」샤,(遊士)였고、 성리학(性理學)을 깊이 연유(隔究)하였으며、 효(孝)로써 천거,(薦짧)되어 벼슬아 예죠져。랴。(禮햄교‘郞)에 이르 (譯)까 쇼(昭)언데、 새。원(生털)이 되어셔 얀음현감(‘풋陰縣藍”햄캡의)을 저냈는데、 쳐。 백바(淸’티,牌)까 있었다。 예학(禮學)에 져。서디(精深”펙원피써원행)했고、 스승에게 배융이 더육 독실(萬賽“엽캡짧)하였。-며、 야。 τ(· 治隱“샌엠)、 도은(島隱”샌섭 이) =-。 여러 현언 (賢λ) 들과 도의(펄義)로 샤캠이 매。T 치」멀(親密)했다。 호(號)는 인다。(忍堂)이다。 다음 샤 n 나 n( 三몇)은 휘(譯)까 고을의 향교(劉校)에 제가(쩔器)를 슈션(修績)하여셔、 략여。(灌總 “캡쐐표션) 기디션새。(金 ‘先·生)이 쓴 『학융기(學합、끓)』에 『바「션새。(朴先生) 융(羅)이 이 도(…펄)의 도샤(都事) 로 있。「면셔, 힘을 크게 썼다。』고 했다。 호(號)는 。 T 다。(憂堂)이다。 차냥(次男)은 휘 將)딱-풍민(朴많敏)의 따념이며、 다음 배위(配‘성)는 고흐。。 T 씨(훌興柳£)인데 판결 샤(判失事) 。 π 인가(柳 ’ 仁 ’션 )의 따나디이다。 야드념 에 판과 따,니 n 셰 판을 듀였다。 자。 냥(흉男)은 휘(譯)까 융(廳)인데、 셰 판 야。 T 들과 더촬어 표。 τ( 固隱)을 함께 스승。­ 료 꾀셨고、 관과(‘ X科)에 올랴、 젠한(典輪)을 거쳐、 그 n 산(金[버 ”쩍그띠원。쩡、 하 n 얀(成‘풋 ”뱀 4 짧‘랩)의 고을 원을 맡았는데、 쳐。백슈령(淸’티守令)드로 이름이 높았고、 또 여러 四 _(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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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 박충민(朴忠敏)의 따님이며, 다음 배위(配位)는고흥유씨(高興柳氏)인데 판결사(判決事) 유인기(柳仁杞)의 따님이다. 아드님 네 분과 따님 세 분을 두었다. 장남(長男) 휘(諱)가 융(融)인데, 세 분 아우들과 더불어 포은(圃隱)을 함께 스승으로 뫼셨고, 문과(文科)에 올라, 전한(典翰)을 거쳐, 금산(金山: 지금의 경북 금릉군), 함안(咸安:지금의 경남 함안군)의 고을 원을 맡았는데, 청백수령(清白守令)으로 이름이 높았고, 또 여러 고을의 향교(鄉校)에 제기(祭器)를 수선(修繕)하여서, 탁영(濯纓:김일손 선생의 호) 김선생(金先生)이 쓴 『학궁기(學宮記)』에 『박선생(朴先生) 융(融)이 이 도(道)의 도사(都事)로 있으면서 힘을 크게 썼다.』고 했다. 호(號)는 우당(憂堂)이다. 차남(次男)은 휘(諱)가 소(昭)인데, 생원(生員)이 되어서 안음현감(安陰縣監:지금의 함양)을 지냈는데, 청백비(清白碑)가 있었다. 예학(禮學)에 정심(精深:학문이 매우 정교하고 심오함)햇고, 스승에게 배움이 더욱 독실(篤實:열성이 있고 진실함)하였으며, 야은(冶隱:길재 선생), 도은(島隱:이숭인 선생)등 여러 현인(賢人)들과 도의(道義)로 사귐이 매우 친밀(親密)했다. 호(號)는 인당(忍堂)이다. 다음 삼남(三男)은 휘(諱)가 조(調)인데, 진사(進士)였고, 성리학(性理學)을 깊이 연구(研究)하였으며, 효(孝)로써 천거(薦擧)되어 벼슬이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