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page

없지만 중국의 違, 元, 金, 明代의 장례풍속과 벽화제작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함께 居, 宋, 元, 明代의 동전이 출토돼고 있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남서 단벽부에 남아있는 마부와 말은 피장자 부부의 出行이나 歸來를 위한 수단으로 판단되며 말과 마부에 대한 회화성은 전기한 장벽의 인물도 보다는 훨씬 섬세하고 사실적인 수준 높은 작품임을 알 수 있 다. 따라서 이를 제작한 畵工 역시 달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말과 마부는 덕흥 리고분을 비롯해서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종종 보이고 있다. 그러나 보다 관련성이 많 아 보이는 것은 역시 전기한 요대의 벽화 가운데 주인의 출행을 돕기 위해 준비된 말 과 마부나 낙타와 수레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22) 또한 마부의 男裝女性 문제도 違 代 張흩正幕 뿔畵의 散樂圖에 보이는 樂士가 團領 도포에 花節冠을 쓰고 舞姬는 交領 右狂의 저고리에 긴치마를 입고 가죽신을 신었는데 모두 男裝女A들이어서 參考가 되 는 것이다 당시 남장여성의 풍습이 유행한 것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벽화 에서는 남자악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주목하고 있다. 이상의 벽화에 나타난 인물도의 복장이나 두발의 형태로 미루어보아 이 벽화의 내용 은 평상시보다는 특별한 행사를 위해 준비된 예복을 입고 나들이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황색 저고리나 치마 그리고 신, 머리 위의 화식관 등 화려함을 고려하 면 장례보다는 명절이나 청명 · 한식 때와 같은 계절에 가족들이 모여 묘소를 참배하 거나 아니면 그 밖의 피장자를 위한 察禮行列圖라고 생각된다. 또한 여기에서 주목되 는 것은 지물의 대부분이 액체를 담는 소도구이고 북서벽에 들고 있는 잔이 두개이고 남서쪽 단벽의 말과 마부가 쌍을 이루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피장자 夫깜를 위한 행사 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액체를 담을 소도구가 대부분 빈 것이파는 의미에서 현지에서 직접 차를 끓여서 공헌하는 다례를 행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만약 술을 공헌하기 위해서라면 우선 가정에서 廳造하여 주전자와 같은 소도구에 가득 채운 것 을 운반하는 모습을 보여야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는 의미에서 술보다는 차를 공헌하기 위함이라는데 무게를 두게 된다.23) 22) 歸師힘11훌G쫓 天慶 元年 A.D.l lll年) 前室 西뿔 뿔畵 出行圖, 圖版124참조.(河北省文物冊究所 編, 『宣H짧幕륜훌훌홈~, 文物出版社, 20이) 23) u'高麗史』 제93권 열전 제6, 한언공 전에는 왕이 부고를 받고 부의로 차 2백각을 내렸다고 하고 있으며 동서 제7, 서희 전에는 나이 57세로 죽으니 왕이 몹시 애로하고 뇌원차 2백각과 대차 10 근을 내렸다고 하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초상시 왕이 주로 술을 내리지 않 맘
59page

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