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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 단벽을 이용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목관의 규모가 석실 내부 크기와 대차가 없 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3. 벽화(圖版45""'88) 벽화는 묘실의 양쪽 장벽과 단벽인 사벽에 모두 그려져 있었던 것으포 예상되지만 조사당시 북동쪽 단벽의 것은 前記한 바와 같이 도굴시 모두 훼손되었다. 그리고 나머 지 세벽의 벽화도 남서쪽 단벽의 것은 비교적 원상에 가깝지만 양쪽 장벽의 것은 석실 내부의 습기로 뒷날 탈락된 부분도 적지 않았고 목관을 석실내부에 안치하는 과정에 서 파괴된 부분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도굴과정에서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벽화는 화강암 판석 위에 석회를 한벌 발라 건조시킨 다음 그 위에 白씹을 다시 앓게 입혀 벽변을 반듯하게 고른 뒤 뿔線으로 A物, 道具, 馬 등 의 A~까IJ꾀↑갑圖와 梅, 竹, 雲文, 벽돌문 등을 據寫하였다. 이렇게 묘사된 그림 위에 여자 머리부분과 같은 검은 곳은 禮彩로 검게 그리고 주황색을 나타낼 부분에는 주황색 淡 彩로 메우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남동쪽 장벽(圖面9 / 圖版57 -7이 上段에는 雲文이 있고 中間에는 梅竹圖와 A物風↑삼圖가 交代로 배치되어 있으며 下 段에는 三段 地臺石을 나타내는 벽돌문이 있다. 그중 상단의 운문은 天井部에서 약간 아래로 간격을 두고, 굵은 뚫線으로 상하 평행하게 직선을 긋고 그 사이인 중간에는 보다 째線의 波狀曲線을 배치한 다음 파상곡선의 屆曲된 上下餘白에 운문을 다시 넣 어 생동감있게 처리하고 있다. 얼핏보아서는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볼 수 있는 당초문 으로 파악될 수 있으나 違代의 벽화고분이나 明代의 칠기 등에서 동일 수법의 운문이 보인다,5) 그리고 그 아래의 중간부분에는 梅竹圖와 A物風倚圖가 교대로 배치되어 있 는데 4Al組의 A物風↑갑圖 3組가 4개소의 매죽도 사이에 각각 포치되어 있다. 훼손이 심해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인물풍속도에 나타난 인물들은 모두 피장자의 頭位 가 있는 북동쪽을 向해서 移動하는 動的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5) 河北省文物昭究所 編, r宣fl遠훌뿔畵J , 文物出版社, 20이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