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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여기 한 할머니가 있다. 한복을 곱게 입고 담담한 표정으로 서있는 할머니는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소녀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삶을 완전히 파괴당한 끔직한 기억을 소녀에서 할머니가 되기까지 44년 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구상한 작품이다. 그늘 속에 잃어버린 소녀의 모습을 그림자로 표현하고, 가려진 문제를 드러낸 후 전 세계의 전쟁과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평화나비' 운동을 펼친 강인한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하여, 두려움을 이겨내고 여성 인권운동가로 살아가신 할머니를 기억하고자 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는 조명을 작은 나비의 날개에 내장하고 할머니 그림자가 큰 나비 날개에 소녀 모습으로 맺히도록 구성하여, 작은 날갯짓이 커다란 평화의 바람으로 일어나길 소망하는 마음을 담고자 하였다. 큰 나비 날개 우측면에 이병창 시인이 쓴 시 '여기에서'를 새기고, 뒷면에는 기부자의 명단을 음각 새김하여 평화의 바람에 뜻을 모은 사람들을 기리고자 하였다. 작품의 모델이자 평화나비 운동의 초석을 다진 김복동 할머니는 2019년 1월 28일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영면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