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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바라믄 숭하잖어.” 정말 예쁘시다는 말에 “즈그 애비 탁해서 이쁘긴 이 뻤제” 하신다. 시신은 비록 신묘역으로 이장해 갔어도 가묘로 남아있는 구묘 지이 더 정이 간다는 김 할머니. 그 때 낳아놓고 간 아들이 올해 나이 서른이 됐다. “인자 손지가 자리 잡을 때 까정만 내가 할거여. 지 낳아준 엄만디 지가 어련히 알아서 헐라고” 대통령이 온다더라고 말을 전했더니 그는 “오믄 또 뭣헐 것이여.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니 고. 폭도 면한 것만도 다행이제. 바랄 것도 없어. 죽을 날이 코 앞인디…”라며 그 ‘징한’ 세 월에 손사래를 쳤다. 김 할머니만의 제의(祭儀)는 빛바랜 조화를 새로 구입해 무덤 앞 화병에 단정히 꽂아 넣 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죽지 않고서는 아물지 않을 할머니의 한 많은 세월 앞에 새 옷 을 갈아입은 스물넷 큰 딸은 ‘오월의 신부’ 그 모습 그대로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_ 시민의 소리, 2008.05.16 김경대 기자 어머니 김현녀 씨가 꽃다운 나이에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먼저 간 큰 딸의영정사진을 정성스레 갈아 끼우고 있다. Ver.3 The Gwangju 5·18 Road Guide map book 8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