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page

5월 17일 1980년 5월 17일 광주에서는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 로 군인이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평화적인 시위가 계속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수사한다는 이 유로 당시 전두환 장군이 계엄령을 선포했기 때문이 다. 시민들은 또다시 전두환이 군대의 힘을 가지고 민 주주의를 짓밟을 것을 알고 있었다. 5월 19일 시위대의 거센 저항에 불안을 느낀 군대는 더 많은 군대를 광주에 보내어 시위를 진압하게 된다. 계엄 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분노를 느낀 시민들은 시위대 에 합류하기 위해 시내로 모이기 시작했다. 시내 곳 곳에서 계엄군이 휘두르는 흉기에 많은 시민들이 다 쳐 쓰려졌다. 그러나 군대의 잔인한 진압은 시위대에 게 무서움을 주기 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절실함을 불 러일으켰고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시위대에 합류하 게 되었다. 5월 18일 대학생의 시위를 두려워한 군대는 휴교령을 내리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후 학생들과 군 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군인들은 곤봉으로 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때려 시위를 진압했다. 전남대 앞에서의 첫 충돌은 5·18민주화운동의 시발점으로 불린다.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들은 시내에 모여들어 군대는 물러가라는 시위를 하게 되고 이에 군대는 밤 9시 이후 거리 통행을 저지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더 깊어졌다. 5·18 민주화운동 주요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