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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오월민중길 오월여성코스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여성들 505 지하 보안대에 끌려간 시민들은 몽둥이 로 많이 맞았다고 증언한다. 여성의 경우 더 욱 그러했다. 폭행은 물론 성추행이 만연했다. “시민 선동 및 시위대에게 음식과 음료수를 제 공했으니 넌 5·18 폭도다”라며 고문하였고, 쓰 러져 의식 잃으면 국군통합병원으로 보내 감 시하였다고 전해진다. 시민들의 고문 후유증 과 오월 트라우마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현재 진행형 5·18로 남아 있다. ‘죽음의 행진’의 현장 1980년 5월 22일, 광주 시내에서 쫓겨 온 계 엄군이 통제선을 설치하여 농성광장의 시민 군과 대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계엄군은 인 근 주택가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농성광장 인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은 이 곳 사선을 넘나들 며 상무대에 있던 계엄사를 방문해 중재와 협 상을 시도했다. 5월 26일 아침, 계엄군이 시 내로 다시 진입하려 하자 조아라 선생을 비롯 한 시민수습위원들은 이를 막기 위해 농성광 장에 맨몸으로 누워 저항하는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다. 구 505보안부대농성광장 격전지 1413 사적 26호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956번길 16 사적 16호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 농성광장 지하철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