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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김재형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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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제주 구우면(舊右面) 두모리(頭毛里) 이장(里長)으로, 의병장 고사훈(高仕訓, 高承天)의 의병봉기를 독려하는 격문에 찬성하여 마을주민 200여 명을 소집하고 의병봉기에 호응할 준비를 하던 중 체포되었다. 제주 출신의 고사훈은 1908년 김석윤(金錫允)ㆍ노상옥(盧尙玉)과 함께 전남 장성(長城)의 기우만(奇宇萬)ㆍ기삼연(奇參衍)에게 제주 및 광양(光陽)에서 무기를 은밀히 제조하여 공급하는 한편, 의병을 모집하여 황사평(黃蛇坪)에서 훈련시킨 후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그는 김석윤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참모(參謀) 및 모병책(募兵責)을 맡았다. 김재형은 고사훈ㆍ이중심(李中心) 등이 발한 격문에 따라 1909년 2월 28일과 3월 1일에 의병을 모아 출병을 준비하고 있던 중, 제주경찰서에서 파견된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압수된 사발통문은 '왜인을 타살함은 그 인민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 의병을 모아 만인이 우리 조선의 옛 제도를 복구하자'는 내용이었다. 김재형은 1909년 4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미수죄(內亂未遂罪)로 유형(流刑)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자료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