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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항공전 영웅 초창기 한국 공군의 대부 전쟁고아의 아버지 딘 헤스 대령 미국 오하이오주의 마리에타에서 태어난 딘 헤스는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양심이 명하는대로 그의 조국과 하나님을 위해 전투조종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5년 후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 제5공군 소속 바우트 원(Bout-1) 부대장으로 가장 먼저 참전하게 되면서 한 번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한국과 평생의 인연을 맺게 됩니다. 전투기 한 대 없이 20여 대의 경항공기가 전부였던 한국 공군을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들기 위해 딘 헤스는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1950년 7월 2일 대구기지에 도착한 이래 진해 및 여의도, 미림기지와 대전기지를 거치면서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비행술과 공중전투기술을 가르쳤고, 자신도 1년여 간 250회 전투출격이라는 초인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부모를 잃고 부대 주위로 모여드는 수많은 고아들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딘 헤스의 눈에 들어온 건 질병과 혹한과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승리를 목표로 전쟁을 하고 있지만 어린아이들이 다 없어진다면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자문하며 그는 부대원들과 함께 고마들을 돌보기 시작하였습니다. 1950년 겨울,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다시 불리해지면서 상황이 급박해지자 딘 헤스는 미 제5공군 군목인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당시 중령) 등과 함께 오갈 데 없이 버려진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제주도로 이송하는 작전을 계획합니다. 이른바 장난감 자동차(Operation Kiddy Car) 입니다. 딘 헤스와 러셀 블레이즈델, 그리고 태르리지 5공군 사령관을 비롯한 수많은 조력자들의 기도와 헌신, 청원과 결단으로 마침내 1950년 12월 20일, 고아들을 태울 미 공군 소속 C-54 수송기 15대가 기적처럼 김포 비행장 상공에 나타나자 현장의 모든 사람들은 벅찬 감동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적 같은 전쟁고아 수송 작전은 성공했지만 제주도에서도 시련은 이어졌습니다. 식량과 식수부족, 약품고갈, 각종 질병으로 300여 명의 어린 생명들이 애석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딘 헤스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한 아이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대두분의 경우 죽음이 그들에게 오히려 신의 자비처럼 느껴졌다. 서너 살밖에 안 된 어린이는 영양실조 상태가 너무 심해 몸집이 신생아처럼 작았다. 그의 몸은 마치 태아처럼 오그라든 상태가 디었다. 그의 최후는 백일해로 끝이 났다' (자서전 Battle Hyun 중에서) 지극히 짧은 순간 평화가 깃든 어린아이 얼굴을 보면서 그는 오래 전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하늘에 있는 별들은 천사들이 들고 다니는 밝은 초롱불이야' 전투기를 몰고 수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딘 헤스. 독실한 신앙인으로 전쟁터에서 늘 의연했던 딘 헤스였지만 2015년 3월, 하늘의 부름을 받기까지 그는 살리지 못한 300여 명의 어린 생명들을 한시도 잊지 못했습니다. 이제 여기 제주의 하늘에서 초롱불을 든 아이들이 영원한 파파인 딘 헤스와 러셀 블레이즈델, 두 분의 품에 안겨 해맑은 웃음을 지을 것입니다. 평화와 약속의 땅 제주도를 찾은 사람들은 두 명의 의인과 300여 명의 어린 생명들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전투장면 부조는 신영진 화가의 그림을 인용하였다.) 2017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