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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 서시 - 오승국(시인) 한라의 오름따라 바람이 불면 볼수록 미더운 이웃 사람들 뒷해 알찬 농사 꿈꾸며 팍팍한 밭고랑을 갈아 엎습니다. 바람은 거세지고 여지없이 메마른 고향땅 남원의 대지를 울립니다. 한라산 남쪽 한가운데라 남원입니다. 수악에서 이승이악에서 사려니악에서 붉은오름에서 물영아리오름 골짜기에서 두려움에 지쳐 쓰러져 간 혼백의 비명 사방팔방에서 울무짖는 아우성으로 들려옵니다. 여윈 잎새 허덕이는 빌레왓의 참깨처럼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의 역정은 지독한 눈물 이야기로 새겨져 있습니다. 무자 기축년 삶과 죽음의 계곡에서 환장하던 그 시절 무도한 총칼바람에 한무덤 들꽃으로 사라져간 영령들이시여 칠십리 길 쉬어가던 의귀원 자락에 영원히 잠들 서천꽃길 마련하여 그대 마중하리니 마을 들녘 감귤향이 온 동네에 퍼질 때면 그리운 부모형제 성님아우 삼촌조카 이웃친지 얼굴 찾아 이곳으로 달려 오세요. 사멸의 불바람이 휩쓸고 간 폐허의 시대 목숨 하나 간절했던 마르지 않는 눈물이여 땀든 의장 눈물 수건 내려 놓고 이제 고향의 언덕에서 영원히 잠 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