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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4월30일 일요일 5 (제124호) 관향조 종친회 밀성대군(휘 언침)을 비롯한 아드님 삼한벽공도대장군(휘 욱), 손자 요동독 포사(휘 난) 3代 3位의 춘향 제례가 지난 달 30일 10시 전국의 후손 500여명이 참 례한 가운데 경남 밀양시 내일동 영남루 의 밀성대군단에서 효근(孝根) 이사(김 해시유도회장)의집례로거행됐다. 이날 제례는 진우(晋佑) 경남지방경찰 청장, 권필(權必) 이사, 상섭(相燮) 청년 회 조직담당부회장 순으로 헌작하고 영 신(永信) 축관의 독축으로 40여분에 결 처 봉행하고 장소를 옮겨 익성사에 봉안 된 대군의 아드님과 손자분의 제향은 종 만(鍾滿)前경애왕릉참봉의 집례로 삼한 벽공도대장군과 두 부인의 목상, 아드님 요동독포사의 신위 앞에 각 헌관이 들어 선 가운데 질서정연하고 엄숙하게 봉행 되었다. 이날 제례는 전일 입재하여 개좌를 열 어 오집사를 제외한 집사분정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밀성재 정당에서 진국 대종 회장으로부터 절차와 예법에 대해 설명 을 들어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진행되었 으며, 청년회는 진설과 음복을 위한 음식 을 준비하고, 여성회는 찾아온 일가분들 을 위 해 따 뜻 한 음 료 를 제 공 하 는 등 시 종 일관 잔칫집 분위기 속에서 모든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진국 대종회장은 개좌에 앞서 훌륭한 어른들을 모시고 집사분정을 할 수 있어 밀성재 앞날은 밝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종헌관은 당연히 청년회 몫으로 지금까지 이의를 재기하는 사람이 없었 으나 최근 들어 논란이 있어 걱정하지 않 을 수 없다며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어 밀 성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 는데협력하여줄것을당부했다. 밀성재는 2001년 청년회 창립부터 대 군단과 익성사의 종헌관을 당연직 청년 회몫으로배정한다. 이는 청년들의 종사 참여와 밀성재 고 유문화 등을 전수하기 위함으로 청년들 은 각 종 회 의 시 시 간 을 내 어 집 례 와 독 축 등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지금은 어느 제례를 막론하고 언제든 집례와 독 축을할수있는역량을길러왔다. 한편 이날 밀성대군단에 초헌관으로 헌작한 진우 청장은 은산부원군파 제주 도 문중 후손으로 지난 해 12월 1일 제28 대 경남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하여 1월 14일 밀성대군단과 익성사에 취임고유와 송은공(휘 익)을 비롯한 선조님 묘역에 성묘하는 등 숭조심이 가득하여 종원들 로부터 찬사와 함께 많은 치하를 받은바 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신라기원2074년밀성재춘향봉행 밀성대군을비롯한아드님손자등3대3位,청년들에게당연직종헌관을맡겨후일 을도모 진국회장이대군단헌관,직일을맡은남근전회장과함께하고있다.(사진왼쪽부터진국,진우,권필, 상섭,효근영신,남근) 익성사 헌관 왼쪽부터 초헌관 진흠/청원. 아헌관 화식/두원. 종헌관 장수/용건분헌관 병곤 축관 유 원/기만 집례종만 개좌 장면-공사원으로 선정된 순구, 원환, 진석, 춘호 현종이 집사분정을 위해 숙의하고 효근 이 사가기록하고있다. 밀성대군단 진우초헌관이 헌작하고있다. 밀성박씨고양선조원당종중회는 지난 3월 18일 경기도본부 정기총회에 집행부 가 참석하여 전 회장님이신 박원준 회장 님의 뒤를 이어 신임 박용호 회장님이 승 계 받아 회의를 주재하며 금년도 정기총 회일정을 휴일로 정한 설명을 하며 상견 례를 하고는 금년 정기총회일은 본 회관 으 로 이 전 한 지 만 1 1 년 이 되 는 뜻 깊 은 날 이기에 옛날 어려웠던 시기에도 역경을 이겨내며 각지부장님을 비롯하여 종친회 원님들의 정성어린 찬조금에 힘입어 현 재의 박씨회관을 구입하여 운영하고 있 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더 욱더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하고 종 친회의 발전을 위하여 열띤 토론을 갖고 는 신 임 회 장 을 중 심 으 로 본 회 가 원 활 하 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참여와 협 조를 다짐하고 회의를 마친 후 오찬장으 로 이동하여 중식을 함께하며 담소를 나 누고각자해산하였다. 원당종중회는 투명한 종중운영과 내실 을 다져온 한편 박상일 회장과 봉준 종무 부장 등 집행부의 대내외적인 활동으로 종중의 위상을 높여와 고양지역의 토호 세족으로성장하고있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도고양시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 2017년도경기도본부정기총회참석,대내외활동븣종중위상높여 박상일회장 박봉준종무부장 가전학사로 높이 추앙받은 행산공(杏山 公), 도은공(挑隱公) 소감공(少監公) 삼 부자의 절의정신과 충효사상을 기리는 춘향제례가 비가 내린 가운데(劇下雨齋 中祭香) 행산재 본당에 마련된 재단에서 지난 6일 오전8시 정웅(政雄) 집례관의 창홀에따라엄숙봉행되었다. 행산공(杏山公)은 서기 1340년경에 고려 충혜왕 때 양효공(良孝公) 간(幹)의 차 차(次子)로서 은산부원군 휘 영균의 제 (弟)로 태어나고, 휘(諱)는 세균(世均) 으로 고려조의 보문각 태학사이며 전문 형(典文衡,정2품)과 중국 元나라에서 한 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고 귀국하여 벼 슬이 평장사(平章事)에 오르고, 밀성부 원군(密城府院君)에 봉해진 후 사후에 시호(諡號)를 충정(忠靖)이라 받아 당대 의거유(巨儒)임을알수있다. 아들 도은공(挑隱公, 휘 文彬)과 소감공 (少監公, 휘 文翊) 형제가 포은(정몽주), 목은(이색)등의 문인들과 교류하였으며 목은 先生의 시중(市中)에도 있듯이 부 자(父子) 세분이 학문이 깊었기에 가전 삼학사(家傳三學士)라 칭하였던 구절이 있다. 한편 제향후에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중 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 육신(도 은공의 아들 신열, 신경, 신보, 신총. 소감 공의 아들 신좌, 신필) 할아버님의 묘역 및 단 소 참 배 에 많 은 참 여 와 성 원 에 감 사 드린다고 말하고 금년에는 종사에 큰 업 적을 남긴 휘 윤현, 윤광 두분의 산소 참 배계획을 추진하고 있음을 밝히고 대종 회 성금모금운동에도 적극 동참해 줄 것 을당부했다. 이날 총회는 종무보 고 및 감사보고를 원 안대로 상정처리하고 풍각면 소재 오졸 재(휘 한주)공의 여포비가 1994년 문화 재로 지정되는데 공헌하고 이후에도 관 리 및 수호에 만전을 기해준 규석 상임부 회장과 진흠 이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 고격려했다. 밀성박씨행산재춘향및정기총회성료 삼부자절의정신기려,오졸재선생여포비수호에공헌한규석,진흠현종에게감사 패전달 행산대종회중희회장이제례에앞서천권(薦圈)을교부하기전천거된헌관들과기념촬영을하며엄 숙한 제례봉행을 당부했다.(사진 왼쪽부터 중희 회장, 종현, 윤흠, 경수, 주곤, 진수, 인천, 연희, 경호, 창수순) 제례광경- 공민왕이 하사한 광효(光孝) 두 글자 가선명하다. 중희 회장이 규석 상임 부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 달하고있다. 충주박씨참의공종중장학회(회장 팔 석)는 지난 달 26일 대전 서구 도마동의 영모재에서 2017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학생들을 격려하였다. 이날 장학금은 서 울대 의대에 재학중인 재훈 학생외 25명 의학생에게 장학금이 지급되었으며 19회 째를 맞은 금년까지 560명의 학생이 종중 장학금의수혜를받았다. 충주박씨장학회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장학금을 매년25명의 학생에게 지급할 예정이며 충주박씨참의공 후손 중 장학 생 신청을 받아 그중 성적우수자를 선발 하여지급하여오고있다. 충주박씨 참의공 휘 진( 풂)은 관조 휘 영(英)의 9세(世)로 개성소윤을 역임하 고 사복시정에 증직된 휘 광리(光理)와 합천이씨(陜川李氏)의 아들 삼형제중 둘 째로 1366년(공민왕 丙午)에 태어났다. 진사(進士)가 되어 나라가 어지러워짐 을 알고 공명의 뜻을 버리고 동생 소(蘇, 판서공)와 함께 호서 덕진현 유성리에 은 거(隱居)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다 조선조에 이르 러 사헌부 감찰에 제수되고, 이어 진해· 직산감무가 되어 많은 치적을 남기고 142 2년(세종 4, 壬寅)년에 하세하니 향년 57 세로 손자 형무(衡武)의 귀(貴)로 인하 여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본리(本里) 도솔봉(兜率峯) 아래 신좌원 (辛坐原)에 예장(禮 葬)되고, 참의공파 (參議公派)의문호를열었다. 부인 보안임씨(保安林氏)와의 사이에 아들 넷을 두었으니 효함(孝誠) 충함(忠 誠) 제함(悌誠) 신함(信誠)으로 문중은 크게 번성하여 19년전부터 육영의 일환 으로장학금을전달하고있다. 충주박씨참의공종중장학회2017년장학 금지급 서울대의대재훈학생외25명,2017년현재560명 수혜 박팔석회장은학생들에게장학증서와장학금을전달하고격려하며선조의음덕을잊지말고후일더 욱 훌륭한 인재로 거듭나종중을더욱더활성화시켜줄것을당부 했다. 뷺선조가 계시지 않았다면 내 몸이 어찌 생겨났을까 조상님을 추모하고 근본에 보답하여 제사를 반드시 정성스럽게 지 내라.(非有先祖면 我身曷生이라 追遠報 本하야 祭祀必誠하라)뷻이는 사자소학에 나오는 글귀로 창절사 동재에 들어서면 벽면에 크게 붙여져 있어 들어오는 모든 이 는 한 번 쯤 읽 어 볼 수 있 어 지 난 8 일 충 남 예산군 간양리의 창절사 시향에 참례 하는 밀성박씨 초암공파 후손들의 선조 에대한효성스러움을엿불수있다. 이날 제향은 난수 재무이사의 집례로 초헌관 영수, 아헌관 신규, 종헌관 진갑 현종이 각각 순서대로 헌작하고 동서종 행으로 봉안된 선조님에 각 분헌관이 분 향후 헌작하는 순으로 40여분에 걸쳐 봉 행되었으며,준수축관이독축하였다. 창절사는 고려의 충신으로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초암공(휘 인우)을 기리기 위해 1986년 건립된 사우이다.아들 영실, 손자 제, 증손 장손, 현손 자형, 5대손 한 우, 한주 등 7位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초암공파대표재사이다. 경내에는 사당인 창절사와 동서재가 있으며 입구 불사이군비와 종중에 역사 (役事)에 공헌한 후손들의 공적비가 있 다. 초암공은 삼사좌윤공(휘 을재)의 7世 후손으로 휘는 인우(麟祐), 자(字)는 경 유(景裕), 호(號)는 초암(草菴)으로 고 려 39대 충목왕 때 사마(司馬) 양시(兩 試)에 합격하였고,문무의 재주가 특별하 여 고 려 말 에 양 광 도 (楊 廣 道 , 경 기 도 지 역) 병마절제사 봉익대부 전법판서 등에 올랐다. 그러나 나라일이 날로 잘못되어 감에 이를 보고 직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듣지않아스스로물러나은거하였다. 이때 왜구의 침입이 치열하여 조야가 황급하게 조정에서 논의하기를 박인우가 아니면 능히 섬멸할 수 없다고 함으로 공 양왕 원년(1390년)10월 다시 일어나 양 광좌우도 수군 도만호가 되어 공을 세웠 고, 공양왕 4년 임신(壬申, 1392) 7월 16 일 조선이 개국하매 망복(罔僕, 이조의 臣民이 되지 않음)을 맹세하고 물러나 충 청도 예산 덕방산 아래 초막을 치고 살며 의리를지켰다. 태조 이성계가 잠룡(潛龍)의 옛 친구 이기 때문에 병조판서로 불렀으나 나가 지 않고 연 세 번씩이나 초청했으나 응하 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자손까지도 경계 하여 과거에 따르지 않게 하며 북쪽을 향 해 가부좌하지도 말라시며 신하노릇을 하지않은의리를보였다. 한편 초암공파 대종회(회장 영수)는 본보 2016년 12월 4번에 게재된 파조별 약사와 시조왕부터 각 사문중의 계보를 쉽게 볼 수 있도록 세계도를 제작하여 배 포하며 뿌리를 쉽게 알아볼수 있도록 하 였으며, 제례 후 가진 총회에서는 수입과 지출, 감사보고를 원안대로 처리한 후 영 수 회 장 은 종 사 에 적 극 참 여 해 준 종 원 모 두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다음 행사 에도 많은 후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 극홍보해줄것을당부했다. /박향서명예기자(충남예산군지부) 충남예산창절사시향봉행 불사이군,충절의표상초암공박인우선생을비롯한6世7位 창절사 제향후 참례한 성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제향은 어린 학생들을 대동하고 3대(代)가 참 례하면서더욱 돋보였다.(사진앞줄제복 입은분 왼쪽부터영수,신규,진갑,난수,준수,상욱 순) 제향광경-준수축관이 독축하고있다. 밀양박씨 규정공 후(后) 참판공(휘 눌생)과 그의 아들 충양공(휘 경신)의 시향이 지난3일(음3.7)전북 완주군용 진면 상삼리(관전부락) 각시산 선산에 서 재 균 집 례 관 의 창 홀 에 따 라 참 판 공 묘역은 병대 종손의 초헌례와 경호, 병 태 순으로 아헌례와 종헌례를 올렸고, 충양공의 단소에서는 단규, 창균, 영한 순으로 헌작하고 병홍, 봉주 일가는 축 관으로 각각 독축하는 등 40여분에 걸 쳐엄숙봉행되었다. 참판공파 종친회(회장 형상)는 이날 시향 후 가진 총회에서 지난해 수입 지출에 대한 결산안을 처리하고 원활한 종중운영 을 위해 상삼리396-1 田 1,425㎡(431평, 재실 앞 두철균 宅 앞) 를9천5백만원에매각키로결의하였다. 參判公(참판공)의 자는 돈지(惇之)휘는 눌생(訥生)호는 운 수이며 시조왕의 49세손으로 규정공 휘 현(絃)이 고조가 된다. 호조전서(戶曹典書) 휘 침의 3남으로 고려 공민왕 갑인년(137 4)에 출생하여 15세부터 목은(牧隱)이색(李穡)의 문하에서 수 학(受學) 하였으며 1409년(조선 태종9년) 36세에 문과에 급제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을 시작으로 두루 요직을 거쳐 세종 때 에 훈련원관사(訓練院觀事)와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으 며 1449년(세종 31년) 8월 7일에 하세하니 향년 76세였다.배위 는중추부사(中樞府事)허해의따님이다.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증직(贈職)되고 시호(諡號) 는 충간(忠簡)으로 고흥(高興) 숭양사(崇陽祠), 장흥 세덕사, 경산(慶山)율산서원(栗山書院)에배향(配享)되었다. 아드님인 충양공(忠 웩公의)휘는 경신(諱景愼)으로 자는 자 흠 (子 欽 )이 고 호 는 둔 수 (遯 쑴)로 배위는 정부인 경주이씨이다. 1414년(태종14)에 출생하여 1438년(세종20) 25세에 등제(登 第), 경주판관(慶州判官), 1453년(단종) 훈련원사직(訓練院司 直)으로 재직 중 세조의 왕위찬탈에 종형(從兄)청재공(淸齋公 諱審問)과 함께 단종(端宗)복위(復位)에 뜻을 같이 하여 곧은 마음과숨은절개는생육신과비유되었다. 묘소는 全州 東十二里 소양산 (韶陽山) 표동(瓢洞) 계좌(癸 坐)이나 실전(失傳) 선고묘하(先考墓下) 설단(設檀)하였다. 철종(哲宗), 병진(丙辰) 1866에 비로서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증직을 받고 충양(忠 웩)의 시호(諡號) 받았다. 경산의 율산서 원(栗山書院)배향되었다. 참판공의 후손들은 경북 경산, 전남 고흥, 전북 부안에 큰 집 성촌을 이루고 있어 이날 제향에 각 지역에서 버스를 동원 100 여명의 후손들이 참례하여 추원보본의 정성을 다하고 종원간 친목을다지는장이되었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경산시지부) 시문(時文)에뛰어난참판공(휘눌생)과생육신에 비유되는아들충양공(휘경신)시향봉행 재균집례의집전으로 참판공묘소에서병홍축관이 독축하고있다. 박형상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