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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엄주동 선생은 우리 민족이 일제에 주권을 빼앗겼을 당시 목숨을 걸고 줄기차게 항일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이므로 이에 그 기적을 비에 새겨 청사에 남긴다. 지사는 1897년 5월 23일 경북 영일군 장기면(현재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임중리 407번지에서 엄재영의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보본 본관은 영월이다. 1912년 보성중학교에 재학할 때부터 대종교를 봉교하였는데, 그때 교주 나철이 그의 이름을 주천, 호를 보본으로 지어주었다 한다. 그래서 어떤 자료에는 엄주천으로 올라 있기도 하다. 지사는 경성고보 교원양성소 재학 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15년 3월 이우용, 최규익 등과 함께 국권회복을 위한 민족자금을 마련하고자 조선산직장려계를 조직하여 서기로 활동하였다. 1916년 나철이 구월산에서 일제의 폭정에 항거하여 자결한 뒤에는 만주로 건너가 대한군정서 총재인 서일의 연락책으로 활약하였고, 1919년부터 1920년까지는 서일의 비서를 지내면서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1921년 상해로 가서 신규식과 함께 활동하였고, 1922년에는 간도 용정에서 군자금 조달을 위하여 미곡상을 경영하기도 하다가 1929년 이후에는 국내에서 서상일 등과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광복 후에는 민족의 얼과 애국정신을 심기 위하여 전국을 누비며 대종교 포교활동을 하다가 1975년 2월 15일 향년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슬하에 아들은 중섭, 대섭, 응섭, 로섭, 상섭, 맹섭, 홍섭, 경섭이요, 딸은 정섭, 두섭, 영섭이다. 나라에서는 지사의 공로를 인정하여 1977년 12월 13일 건국포장, 1990년 12월 26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묘는 국립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이 추모비는 우리 고장이 낳은 지사의 숭고한 얼을 추모하고, 후세 교육의 본보기로 삼기 위하여 장기발전연구 연구회의 주관으로 전시민의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2016년 11월 3일 포항시장 봉화 금락두 비문을 짓고 창녕 이봉학 제자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