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page

회에 복사기등 사무집 기를 지원하여 유족회 활동을 원활히 하였으며 단기때잉3낸 5훨20일자l 마구터지는 대학살1.);사,전남함평시도 양민 천 여명、와 1960 변 5펄‘~1 열자〔나는 시체더미서 살아 나왔다. 함평학살사 건 쟁촌자의 맑 한국일로(광주 이상운기자)의 양민학살 현지확인 보도 자료를 발굴하였다. 학살당시 동삼면 선무꼼작대장인 윤언식(서울거주;7,8,9,10대국회의 원;99년사망)의 학살사실 자필확인서 를 확보하였고, 학살당시 월야지시 장의 직책에 난무한 이계필(서울거주;2000년 사망)과 순경 오정인(함 평읍기주)의 학살사실 확인서플 지-팔로 받아서 멍에회복애 연익음 하 게되 었다. 남산놔 학살현장에서 생존한 적남숙(손불면 석창리 농암거주)과 양채 문(월야리 전하거주)의 생생한 증인서도 반이- 명예회복을 위한 중거를 확보했다 마. 유족회 차원 학살을 딩-한 이듬해부터 유족늘은 역융한 죽음윤 안리려고 노력하였 :나 관계기관의 억압스로 오히러 공비기-족으토 몰려 생활애 어려움을 겪었다. 5. 16쿠네타에 의하여 군사정부가 틀어 선 후에는 주동자들이 깎혀가 고초를 겪지· 유족들은 구심점을 잃게되어 유족회가 흐지부지 하게되었다. 1993년 유족회를 다시 구성하고 학살장소를 순회하며 위령제를 봉행 하다 6회째인 1998년부터는 처음- 학살이 시 작된 12월6일을 합동위령 제날로 정하고 매닌 희생자들의 벙복을 빌고 있으며 금년에 11회째 봉 행하고있다 명예회복 청원서를 14대국희 (94. 1 1.7 국회접수353호),15대국회 (90.9. 6국회칩수1055호), 16대국회 (2000.7.3 국회접수10호.행지-위 3호)에 제 출-하였다. 학살50수기를(2000닌) 기념하며 한새틀에서 진사한 5중대군인 2병의 전사111 를 전사자 송기봉 가족이(형 송소수와 부인) 참석한 가운데 정 산리 내정마을앞 24호 국도변에 전사비륜 제박하였다 넨맨소속- 변호사들의(조용환 등15인 변호사) 도움을 받이 국회의장을 - 9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