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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양민 524명 집단학살 사건 개요 ’함평양민학살사건’은 한국전쟁중 공비토벌을 담당한 국군부대중 지리 산 지구 토별작전올 수행하면서 발생된 주민 회생사건으로 해보면에 주둔해있던 5중대장(權俊玉 대위)과 소속군인들이 저지른 학살로서 국 가의 공적인 기록에는 없으나 당시 학살에 참여한 생존꿈인들과 지서 장,순경,선무공작대장,학살현장 생존자들의 중언에 의하면 민간인이 아 |닌 순수한 양민(민간인과는 구별됨)을 학살하였기에 ‘함평양민학살사 l건’이라고 명칭을 붙였으며, 명예회복을 위해 유족회가 구성되고 합동| 위령제를 봉행하며 국회에 입법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사)함평사건희생 감變를 설립하여 명예회복 추진파 유족회 업 렐 전담하고있다 1. 언재 함평사건은 1950닌 6월25일 한국전쟁(일부에서 는 6.25잔쟁 이마고도 함)이빌·받하고 유엔군과 국군이 반격을 시작하여 서윷을- 탈환하며 북 한군을 계속 추격하는 가운데 1950년 8월27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 54 호보 곽군 제 11사단을 창설하고 이 부대문 하여금 꽁비토벨의 역할을 맡겼다 이과정에 지 리산 공비토벌을 담당한 국군 제 11사단 세 20띤대 제2대 대 제5중대 중대장(f$俊玉 대위)과 5종네 군인들에 의하여 1 950년 1 2윌 6일 함평군 월야면 정산리 장.]lL,동촌,죽립마윤을 시삭으로 양민을 학살 하기 시작하여 12월7일에는 월야면 월악리 남산외에서, 12월9일에는 월야띤 91치리 외지마을과 나산면 이문리 이문초등학교 앞(사정 111-윤) 에서 집애있논 주민들을 o}을 앞으로 모이도록하여 학살을 하었다. 또한 12월31 일 해보띤 상곡리 썽·구룡- 국노24호 도로변과, 1951년 1 월 12일 해보면 상곡려 모평마을에서는- 면소재지로 피년-을 가도록 영령 을 한 후 피난대열에 총을 난사하여 학살하였다. - G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