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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피난을 가지 않느냐, 공비와 연락을 위해서 집을 비우지 않으 니 노두 공비분자라며 해보면 소재지로 피난을 가라고 재촉한 후 피난 대열에 총을 쏘아 사살한 것입니다. 현장에서 부모와 형제자매를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난 ‘이 금남(해 보 상곡리 거주)’의 증인과 당시 총상을 입 어 지금도 절룩거리는 ‘장종석(월야면 용정리 거주)’의 증언도 슬픔 그대로 입니 다. 당시 부모님과 동생 이 학살된 ‘박용원(광암리 거주)’과 어머님 이 룹이·가선 ‘김재찬(대창리 거주)’의 증인에서도 5중대 군인플의 잔 혹성을 충분히 알수 있습니 다 5. 1951년1월14일 나산면 우치려 소재마을-과 이문리 시·정]..11-윤에 서도 5중대 군인들에 의하여 50여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집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을 앞으로 모이게 한 후 마을 앞 논 으로 데리고기- 학살을 하였는데 젊은 사람들은 해보변의 학살소 식을 들었기에 사전에 피했고 노인들과 냉약자들만 집에 있다가 참변을 당하는 아픔이 유족들애게 님-아 있습니다. 특히 나신-면 ‘이계준(우치리 거주)’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경 찬기록에 악질여맹 위원장으로 기록되어 자녀들의 취직시 신원소 회에서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위 와 같이 너무도 분통한 “함평양띤 524명 (월야면350,해 보면128,나산면 ;46)이 학살“을 당히-였는데 가해자인 정부는 왜 침묵을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습니 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 유족들이 “함평양민 희생자 524명”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그 동 안 노력한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fi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