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page

라는 시럼-을 두들겨 패면서 도로를 피해친 사람들을 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급한김에 관련 이 전혀 없는 몇사람을 지목하였는데 그 사람들까지 해보로 데려가 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라. 남산꾀학살이 있고나서 40여일 후인 50년12월31 일 해보면 쌍구룡과 51 년 1 월 12일 상곡리 모평마을애 서 또 한 차례의 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마을은 소개지역이어서 마을사람들이 집을 비우 고 나왔으나 8중대 군인들로부터 들어가도 좋다는 허 가를 받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5중대 군인이 나타나 다시 동네를 비우라고 하여 마을시·람들은 겁에 질려 마을을- 빠져 나오고 있는중에 쌍구령 왼쪽 산기 흙에 기관총을 설치힌- 5중대 군인이 무차별적으로 총격 을 가하여 마을사람들을 살해하여 전부 100여명이 학살 되었습니 다. 모평 마을사람들을 살해한 이유는 명령불복종, 즉 5중대가 마을을 비우라고 했는데 비우지 않았기 때문 이라는 것인데 결국 8중대에 의해 귀가둡 허력-받은 모평 마을 사람들은 억 울히-게 쑥어간 것입니다. 윤오중씨 (62)는 당시 열두살이었는데 미-을입 구에서 개머리판으로 죽도록 두틀겨 맞고 뒤늦게 쫓겨 나오 다 군인들의 눈을 돌리는 사이 논두렁으로 굴러 목숨 을- 구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윤씨는 이날 학살로 아버지와 아머니, 그리고 임신한 큰 누나와 작은 누나, 생질녀등 6명의 혈육을 잃었습니다. - 4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