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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 놓고 선무 활동을 하던 중 총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하에, 당시 남산외 학살이 벌어진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갑제1호증 중 152쪽 사실확인서 참조) . 바) 해보면 급곡, 월야변 외치 마을에서 학살 1950.12.8 해보면 급덕 리 금곡에서 2명을 학실하였고, 1950. 12.9. 월야면 외치 리 외치부락에서, 그 곳 주민이 공비와 짜고 야간에 광주 - 영광간 도로를 파헤쳐 군 작전 차랑 통행을 빙해하고 있으니 동조자률 색출한다 고 하면서 주민들을 구 도로가 있던 외치재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국군은 주민 이계주를 구타하면서 도로를 파헤친 사랍올 대라고 하여 이계주가 영겹결에 손가 학질을 하니 21명을 뽑아, 그 중 나오라는 이유를 물었던 정기복을- 현장에서 사 살하고, 그래도 동조자가 나오지 않자 월야 초등학교 뷔와 해보면 금덕리 두리샘 언덕 공동묘지에서 20여명을 사살하였습니다(강제1호증 중 157쪽 주민들의증언, 157쭉l 갑제8호증 월간예향 참조) . 사) 나산면 이문리 사정마을 1950. 12. 9 나산면 이문리 사정 마을-에 들어가 주민들을 모이게 하。1 10여 명을 학살하였습니다(갑제2호증 한국전쟁과 양민학살 제115-116쪽; 갑제3호증 증 제106 쪽 희생지와 피해상황 도면 ) . 아) 해보면 상곡리 중앙초등학교 뒤 1950. 12. 31. 합병군 해보면 대창리 성대마을에서, 주민틀에게 작전상 마을율 소 개하니 면 소재지로 피난을 가라고 명령하여 주민들이 집을 나서자, 50여 명을 해 보 중앙초등학교 뒷동산에서 사살하고, 이틀을 모두 방축에 내다버려 숨이 끊어지 지 않았던 사람마저 익사하게 하였습니다. - 3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