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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제5증대는 1950. 12. 2. 시목 앞들에서 공비들과 쿄전을 벌 였고, 12. 5 밥 공 1:31들이 월야지서를 습격하였으며, 12. 6. 에는 내동 뒷산인 송동재와 월악산에서 공비들이 봉화를 올린 일이 있었는데 2) ..:J.러자 제5증대는, 1950. 12. 7. 오전 8시경 월악산 인근의 월야면 월악리 다래 기 마을(현재의 지변, 내동, 동산, 순촌, 송계, 괴정, 성주 등 7개 마을)에서, 주 민둘에게 광주-영광 간 국도 보수공사를 하러 가니 나이에 관계없이 모이라고 명 령하여 주민 700여 명을 집합시킨 후, 이들율 마을로부터 300미터 가량 떨어져 있 는 남산외로 인솔하여 갔습니다 중대장 괜준옥은 주민들 중 15세 미만 및 45세 이상을 가려내어, 마을보 가서 집 과 벗가리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하여 내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엽은 여성까지도 포함된 15세 이상 45세 미만의 주민들을 세워놓고, “군인과 경찰가족 또는 유가족, 군인들에게서 온 펀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앞으보 나오라”고 하였습 나다. 당시의 생존자 정연옥의 증언에 의하면, 이 때 정병오(당시 25세 가량)가 나서벼 “나는 방위군 소데장인데 현재 낙오자이다”라고 말하였는데, 핀준옥은 “이 새끼”라는 한 마디만 한 채 그 자리에서 정병오의 머리에 총을 한 벤 쏘았고, 정 병오가 죽지 않고 두 세 걸음 나서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지자 연이아 두 번 총 을 쏘아 살해하였슴니다(갑제8호중 월간예향 참조) 잔시 후 권준옥이 갑자기 군인들-율 향해 “엎드려”하고 고함을 지르는 즉시 주띤틀 을 향해 무차별 사격이 시작되었고, 이에 주민등이 쓰러지놔 나자 권준옥은 “지급 살아 있는 사람들은 재수가 좋은 사람틀·이니 살려주겠다. 일어나 봐라”고 소리쳤 습니다. 이를 믿은 주민들 50여명이 일어나자 다시 종을 난사하였고, 또 한 번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진짜 살려주겠다. 일어나라”는 소리에 일어난 주민들 역시 총이 난사되었습니다. 권준욱은 “이 번에는 진짜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 - 3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