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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보도자료 1949년-2010년] ;:1. 001 I그..LL E를 6월 26일 1998년 음력 (윤)5월 3일 제2900호( 1판) 넨 : 훌잉 l 뜯 1 ... '.. . r-류「를 슨순순튿 .. ‘ s 홉置뿔뿔펠톨톨鷹홉講騙흩홉훌變醫難뿔&聊훌잉11훌繼憐靜훨훌홉훌醫홈聊훌뿔홉 흉繼훌& 鍵훌훌훌훌 훌혔靈훌앓옳鍵훌훌& ,. " •• ~.했._". 짧짧鍵훌짧훌 훌훌題짧훌 당사 부대원 “200명 총살” 잇따라 증언 국회 진상조사위 조만간 현지조사키로 함평 뽕 1학살사건에 대한 베일 이 벗져지고있다. 지난 50년 12월'"'-'51년 1월 사이 5백 24명의 민간인이 국군에 의해 학살됐다는 가해자측 증언이 잇따 르고 있는데다 정치권에서도 진상 규명위원회를 구성키로 하는 등 40 여년전에 일어난 이 사건의 진상규 명작업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당시 민간인 사살부대 연락병이 었던 김일호(67.제주 시)씨는 25일 함평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 증언을 했다. 김씨 는 함펑군 정근욱(49) 위민실장과 만나 당시 자신은 제 11사단 제5중 대(중대장 권준옥대위) 연락병이었 다고 밝히고 ’‘당시 전우 2명이 빨 치산에 의해 사실된 직후 부대 전 체가 몹시 격앙됐다·’면서 、 “50년 12월7일 함펑군 월야면 남산매에 서 남녀를 불문하고 15'"'-'45세의 7 개부락 주민 2백여명을 총살혔다” 고증언했다. 이에 앞서 작년 7월 당시 선무공 작대 고}견대ε1이었던 윤안석 (84. 서울)씨도 “제 11사단 5중대의 함 평양민학살사 건 현죠k거l 있었다”며 ‘'15세 이하 45세 이상의 주민들은 빨치산과 관계가 없다고 부대장에 게 주장,약 2백여명의 주민을 학살 의 현장에서 구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펀 지난 15일 국민회의 중앙당 간부위원회에서 김인곤의원의 요청 으로 ‘함평양민 학실사건 진상조사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 조만간 함평현지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일단 진상규명이 이뤄지면 특별법 이 제정돼 희생차및 일부 가족들의 호적상 불이익이 청산되고 위령탑 도 건립되는 등 명예회복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성격이면서도 지난 95년 정 기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돼 명예 회복을 일궈낸 거창양민학살사건과 달리 함평양민학살사건은 96년 유 족 2백 22명이 전남도에 유족등록 을 하고 명예회복을 요구했으나 극 무총리실에서 ‘군작전과 무관한 사 안’이라며 도지사에게 반려, 지금까 지 그 진싣L규명 ξ법조차 미뤄져 왔다. / 임동욱 기자 1 | 4 (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