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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78 한국전쟁전후 민칸인학살 심포지움 훨殺資料 마구터지는 太볕殺 秘史 全南 成平서도 良民千餘 新告엔 共뎌E討fX의 훌휴麻한 戰果라고 - 樓紀 4293년 5월 20일(금요일);한국일보 5단 기획기사 - I함평에서 20일 광주지사 이상문기자발) 9.28수복후인 82년 음력 10.29일부터 음력 12.10일경까지 사이에 거창, 함양, 산청, 문경등지의 학살사건에 비하지 못 할 1 천 여명의 양민학살 사건이 전남 함평군(威平那)내의 월야,해보,나산(月也,海 保,짧山)면 등지에서 감행되었다는 사설이 동터오는 제2공화국을 바라보며 10년 동안을 입 다물고 있던 현지주민들에 의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1천여명을 학살한 군인들은 제5사단 20연대(당시 연대장 박기병 소령 )2대대 5중대의 중대장 권(權 俊 -k=당시대위 현재는 대령으로 승진 서울에 있다는 설이 있음)의 지휘하에 동 중대사병들이 참가하여『월야』면의 325명 및 『해보』면의 400명과 『나산』면의 300 명의 양민을 무자비한 수단으로 학살하였다- 군인들은 영광군(靈光컵~)과 함평군을 가르고 있는 불갑산(佛甲山) 공비토벌을 위해 해보면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양민을 학살한 숫자를 공비토벌의 혁혁한 전 과로 상부에 보고했었다. 기자가 월야면에서 20일 면사무소와 부락민으로부터 확인한 월야면의 학살 경위를 보면 음력 10월 29일 상오 11시 해보면에서 넘어옹 5중대원들은 월악리 (月찮里) ,외치리(外n받별)등 5개 부락민을 각각 약500명씩을 모아 @ 군경가족과 ø 50십세 이상의 고령자 @16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가려내고 담배를 피우라 고 한 다음 기관총과 M1소총으로 무차별 총살하고 여기서, 살아나온 부락민들에 게 다시 총질하고 그것도 모자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시체에 또 다시 총을 싹 숨이 끓어짐을 확인한 후 가택수색을 하여 현금6천 8백십만환, 백마 1천7백9십8 석, 잡곡1 백5석, 잡곡1 백5석, 말4두, 돼지 144두, 닭2,542마리를 강제징발해 갔다는 데 이 면에서는 빨갱이는 한 사람도 없이 양민만 5일 간에 걸쳐 부락 단위로 학 살됐다는 것이다. 학살에서 목숨올 건진 어린이와 늙은이를 시켜 그들의 집에 불을 놓게까지 했다는 것이다. 현재 유가족들은 동 사건 진상조사를 정부에 요구하여 동학살의 총지휘자인 『권』올 즉각 구속 극형에 처할 것을 진정할 것이라 하며 만일 이를 들어주지 않을때는 부락청년들을 총동원하여 r권』 은 물론 그의 가족들을 찾아 몰살 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다 또한 해보 나산면 둥지의 학살은 역시 『권』의 지휘하에 이루어졌는데 여기에서는 부녀자와 고령자를 가릴 것 없이 부락 단위 흐 가까운 산중턱에 모이라 돼놓고 지정된 장소에 모이자 마려 준비 해 둔 기관 총으호 사살했던 것이다. - 5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