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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경남 · 전라지역 보도연맹원 · 양민학살의 현장 45 i 양민 150명을 공비토벌이란 명목으로 희생시킨 사건으로 당시 210여 가구가 살았던 월악리 마을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지금은 양계장으로 변해 버린 현장) 땐 보약을 먹어야 하듯이 아무것도 모르고 좌익을 따라다닌 자는 ‘보도탕’ 을 먹어야 한다”면서 ‘보도연맹’ 가입의 타당성을 연설하 고 다녔다. 이로 인해 당시에는 보도연맹에 가입한 주민을 가랴켜 ‘보도탕’을 먹었다고.하기도 했다. 역시 미점령지역이었던 김해와 의창(義昌)에서도 김해군 내 5개 지역에 걸쳐 750명의 보도연맹원들을 집단총살하여 또 한 번 세상 을 놀라패 했다. 아곳에서는 1960년 희생자 유족들아 유족회를 조 직하여 군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학살현장을 찾아내 유골발굴작업 을 별였다. 이 과정에서 10여 년이 지난 그때까지 썩지 않은 시체 가 발견되어 작업장에 있던 유족들의 슬픔을 더해 주었다. 5 . 16 아후의 수난 감해군 생림면 나막고개 부근 골짜기에서는 1960~ 1961년에 유 족들에 의한 시체발굴작업이 있었다. 당시 얼마나 급했던지 총살 m 잉 ζ 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