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page

[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이 희생됐다. 이곳 후平마을의 증언자들인 李모씨 (52 · 당시 12세)와 金 모씨(57 . 당시 17서1) 그리고 金모 노파(75 . 당시 35세)등은 당시의 공포가 생생한 듯 하나같이 자신의 신분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또한 사진찍기를 거부하며 어떤 보복이 자신과 가족들에게 가해 질지 모른다며 한사코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李씨는 이날 아침 海保면 소재지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화를 면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보니 마을은 갯더미로 변해 있었다. 그의 가족들은 일부 耳文리로 피난을 가고 할머니와 숙부 가 방을 구하지 못해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헛간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고 그의 숙부는 5 중대의 기관총에 살해되었다고 했다. 이날 아침 5중대의 습격 이유를 이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전날밤 5중대가 주둔해 있던 海保면 琴德리 장터를 향해 海保국민학교쪽 언덕과 佛甲山 飛女筆(해발156m)이I 서 공비 들이 봉화를 피우고 국군의 1.4후퇴를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총을 쏘아댔다. 부아가 치민 5중대가 佛甲山주변마을을 아예 없애버리기 르 작정 한 것이략고 주장했다. 그당시 후平마을엔 우익계 인사들이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펴난을 간 상태였다. 야날 아침 추平마을에 들이닥친 5중대는 다른 마을과 마 찬가지로 골목을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Ir마 1 ! · A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