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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l威平양민학살사건 게 얘기하고 있다. 仁川상륙작전으로 인해 적들의 보급로가 끊기고 국군과 유엔군들이 계속 북진해 갈 무렵 佛甲山의 공비들은 기세가 완전히 쩍여 국군순찰병들이 보여도 피해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中共군이 전선에 투입되면서 전세가 뒤바뀌어 51 년1월4일 1.4후퇴 이후 공비들은 공공연히 지나다니며 양 민들을 위협하고 다녔다. 木浦 麗水 順天등지의 좌익분자와 미처 퇴각하지 못한 북 괴군 등 수천명 이 모여 은산하고 있는 佛甲山의 빨치산들이 날뛰기 시작하자 佛甲山자락의 마을들을 습격한 것 이 아니 겠느냐고 했다. 鄭씨가 하루종일 돗자리를 짜고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 아와 보니 동네는 한집도 납김없이 불질러져 새까땅게 변해 있었다. 기가 막혔다. 마을사람들을 찾아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집으로 가보니 벗단 쌓아 놓은 것마저 불에 타 버렸다. 하는 수 없이 그길로 형님이 살고 있는 耳文리로 갔다. 당시 城大마을에는 627}구가 살고 았었다. 국군토벌대와 공바에게 이중 고통을 받고 있던 마을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아 l羅山면 耳文리에 피난을 가 있었다. 전쟁중이다보니 유언 비어가 난무해 처녀가 길을 가면 군인들이 겁탈을 한다는 등 국군이 공비들에게 잡혀 머리가죽이 벗겨졌다느니 참혹한 이야기들이 떠돌아 다녔다. 처녀들은 나갈 일이 았으면 아예 머리를 올리고 옆집아아 를 빌려 동에 업은 채 여러사람이 몰려 다녔다. 당시 이곳에서 지서를 지켰덮韓찮(지금의 방위병과 비슷 함)근무를 한 金양묵씨 (62 . 上갚려 城大마을 당사 22서Ì)는 학 - 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