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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단지 공비들야 발호하던 佛甲山자락에 살았다는 죄목으로 개인적인 감정이든 명령에 의해서이든 하나같이 끌려나가 토벌군들의 총탄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이곳 주만들과 유가 족들은 5중대 중대장이었던 權준옥 대위를 죽기전 꼭 한번 만아라도 만나길 원하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도 억울하게 죽어간 가족들의 총살 이유를 알고 싶어서라고 한다. 月也면 月폼라 6개마을을 초토화시킨 5중대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잘못됐음을 인정한 건지는 몰라도 마을을 습격한다든지 광기를 부라는 일이 없이 조용 히 자중 하는 듯 했다. 그러 나 그것도 잠깐 月 폼리 南山외 학살사건을 일으킨지 꼭 34일 째 되던 51년1월 10일(음력 12월3일) 中共군의 개입으 로 인해 유엔군이 밀려 1-4후퇴가 시작된 지 6일째 되던 L후 E즈 • 이들은 海保면 上깜라 城大마을의 양민들을 어 린아이 노 약자 부녀자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사살해 버 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도저히 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마을엔 좌익분자도 없고 공비들에게 부역한 사람도 없었는 데? jJ라며 자신의 형님덕에 살아났다는 鄭윤덕씨 (74 -上용 ‘ ------- “ - 리 城大마을 당시44서D는 증언한다. 鄭씨는 이날 아침 군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마을을 빠져 나갔다. 전날밤 耳文리에 살고 있는 형아 자신의 집으로 와 돗자리를 만들라고 했다. 하도 세상야 어수선해 집밖을 냐가 가도 겁이 나고 가기 싫기도 해 바빠서 못간다고 했다. 허나 형의 말을 거역하기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새벽에 일찍 일어나 형집으로 가는 바람에 5중대의 습격을 피했던 것이다. 鄭씨는 군인들이 자신의 마을양민학살 이유를 이렇 ;씨 ζ 니 ? ] q 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