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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보도 자료 1990년-2001 년] 톨흩운t平양민학살사건 본적이 없었다고 鄭씨는 증언했다. 당시 주위상황은 국군이 9월 인천상륙 작전을 감행. 완전 북진했고 고립된 인민군이 지방좌익분자와 깊은 산중에 은 신해 밤만 되면 산간마을 등지로 준동, 양식둥을 빼앗거나 훔쳐가기 때문에 양민들은 그들을 「밤손님」이라고 불렀다. 국군과 경찰은 적은 병력으로 수복지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마을에 남아 있는 주민들만 괴로움을 당 할 수 밖에 없었다. 佛甲山주변에션뭘홍하던 공반뚫 밤이 면 그들의 마을로 내려와 우익인사를 납치 살해했다. 낮엔 국군토벌대가 들어와 빨치산들에게 양식을 빼앗간 양민을 「통비분자」로 몰아 부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양민들은 한쪽의 괴로움에 시 달리는게 낫다 싶어 빨치산의 부역군으로 끌려 가기도 했다. 이들중 마을로 내려오지도 못한 채 공바아닌 공비가 되어 버린 사람도 았었다. 그러나 자신의 괴로움을 덜기 위한 몸 부림 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지가도 했 다. 1950년12월7일 「南山꾀양민학살사건」은 이 모든 얽히고 설킨 사연속에 1백50병 양민의 목숨을 앗아간 채 끝이 났 다. 人間과녁 1950 1 념12월6일과 7일 이틀간에 걸쳐 金南威감E군 月也면 享山리 東村마을과 月 돕리 內洞 池邊 順村 松樣 東山 塊亨등 7개마을 양만 2백여명은 국군토별대인 5중대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했다. 강 I u